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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8) "신부님, 시건방져진 것 같아요" (펌)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5-27 조회수762 추천수11 반대(0) 신고

                                  <소록도성당 : 김연준 보좌신부님>

 

사제로 서품되고 얼마 안 있어 곧바로 광주시내의 한 본당에 발령받았습니다. 서품식에서 땅바닥에 엎드리며 가장 겸손한 사제로서 가난한 사람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나름대로의 포부를 가지고 본당에 갔습니다.

 

바로 그날 보좌신부를 환영한다며 어느 식당에 초대받았는데, 짐을 정리하느라 약간 늦게 갔습니다. 사목회 임원과 성당의 원로들이 이미 앉아있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식당 테이블 중앙에 앉아 있던 연세 지긋하신 분이 황급히 일어나더니 신부님 오셨다고 맨 끝자리로 가시는 것입니다.

 

30대 초반의 나는 당황했습니다.

놀래서 멍하니 있는데 테이블 중앙 빈 자리에 저를 앉게 하였습니다.

황송하고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아무튼 처음의 제 모습은 이렇게 겸손했습니다.

신자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면 더 깊이 머리를 숙였고, 교리 선생님들에게 절대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애원에 가까운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람의 넋은 칭찬받기 전까지는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본당에서 새 신부는 일단 순수하게 보여서 그런지 무슨 일을 해도 칭찬받습니다.

강론이 이상해도 '잘한다.'하죠,

노래를 못해도 '잘한다!'이렇게 칭찬만 듣고 6개월 살다 보면 좀 맛이 갑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6개월 정도 지났을 것입니다.

겸손한 사제로 살겠다고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한 사제생활은 짜증을 잘 내고 화도 잘 내고 말투도 명령조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왜 이런지 원인을 모르겠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을 많이 했던 자매님이 저에게 대뜸 "신부님 시건방져진 것 같아요." 이러는 겁니다.

단둘이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에고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순간 저는 얼굴이 노랗게 되었습니다.

창피함으로 얼굴이 빨개져서 붉으락 푸르락해졌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사제직이 무시 당하는 것 같은 당황함까지 겹쳐서 어떻게 할지 모르다가 겨우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이런 저의 변화를 보고 그 자매님도 당황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라도 쪽에서 '시건방지다.'라는 말은 건방질 건덕지도 없는 것이 건방진 것을 말하거든요.

그 말을 하니 그 자매님이 더 얼굴이 빨개져서 "신부님, 그것이 아니고요,"하는데 한번 뱉은 말 주워담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됐습니다."하고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귓전에 '그것이 아니고요.'라는 말만 되풀이 되어 들려왔지만 뭉개진 자존심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사제관에 와서도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불과 6개월이지만 강론 잘한다고 소문났죠, 고해성사 잘 준다고 소문났죠, 미사 정성스럽게 봉헌한다고 소문났죠, 개인적으로 괜찮은 신부라는 자부심까지 보태어져,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추락할대로 추락한 것입니다.

마음이 수습이 안 되고 복수의 칼만 갈았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저 신자가 가장 아프게 상처받을까? 감히 사제에게 저런 말을 해? 그래, 성당에 못 나오게 해야 해! 그런데 어떤 구실을 만들지?'

 

별 어처구니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를 여러 번, 치명타를 가할 뾰족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신부님 시건방져진 것 같아요.'라는 말을 곰곰이 되새기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놀랍게도 시건방져진 저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나는 변해버렸다. 불과 6개월 만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식당에서 연세 지긋한 분이 급히 일어나 내게 자리를 내어 주었을 때 당황하고 송구스러웠는데,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누가 있으면 기분 나쁘다. 그래 나는 변했다. 신자들이 인사를 하면 처음엔 더 깊이 고개를 숙였는데, 나는 요즘 목만 까딱한다. 반말이 아니더라도 부탁조의 말은 간데없고 명령조이다. 그래 나는 변했다. 처음엔 그렇게 고분고분하더니 지금은 화를 잘 낸다. 그래 나는 변했다.'

 

이런저런 생각에 미치니 정말 제가 시건방져져 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진정한 창피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래 자매님의 그 말은 성령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이구나! 가장 자격없는 신부가 당연히 들어야할 말이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그 자매님한테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내 목소리를 확인한 그 자매님이 다시 "신부님 그것이 아니고요." 했습니다.

저는 "뭐가 그것이 아닙니까? 자매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자매님은 "죄송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했지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들어야 할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살다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상처받는 말을 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 몰이해일 수 있고 오해일 수 있고 어떤 면에서는 모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곱씹고, 곱씹고 하면서 받아들이다 보면 정말로 상상하지 못할 커다란 은혜가 됩니다.

오른 뺨을 맞고 바로 왼 뺨을 내밀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이겠습니까? 상처는 상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분명 나를 겸손하게 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줍니다.

 

사제로 서품된 지 올해로 6년째입니다. 신자들은

잘생긴 신부보다

말 잘하는 신부보다

노래 잘 하는 신부보다

강론 잘 하는 신부보다

 

겸손한 사제를 원한다는 것을

 

갈수록 크게 느끼지만 왜 이리 잘난 척을 잘하는지 답이 안나옵니다.

다시 한번 그 자매님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고통이 가득한 땅 그래서 은총이 가득한 땅 소록도에서 여러 사연들을  접하며 주님의 섭리를 누리고 있다는 김연준 신부는 아픈 사람들의 진정한 벗이 되고 싶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6월호: 그리스도의 향기에 실린 글)

 

서품받고 바로 오신 새 신부님에겐 공통적인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본당에 와서 수많은 신자들과 대하려니 낯설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하여 그런지 아니면 아직 초심이라 그런지 신자들을 보면 먼저 고개숙여 인사를 하십니다. 나도 지금까지 두 번의 새 신부님을 뵈었는데, 좀 떨어진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는데도 먼저 인사를 하시는 겁니다. 처음 그런 경우를 겪었을 적엔 당황하기도 하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자꾸 반복되다보면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젠 새 신부님이 눈에 띄였다 하면 잽싸게  먼저 고개숙여 인사를 합니다.

 

초심을 언제까지나 유지한다는 건 사실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않으려 늘 의식하고 산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나 솔직하신 신부님의 글에 많은 공감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옮겨보았습니다.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늘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머나먼 섬 소록도에서 몸도 마음도 아픈 분들과 함께 하시는 김연준 신부님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늘 함께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신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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