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죄 때문에 아파본 사람이면 / 조규만 주교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4 조회수860 추천수12 반대(0) 신고

6월 4일 (일)요일 성령 강림 대축일 (요한 20, 19-23)

 

조규만 주교님의 강론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사도들이 성모님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이 가득히 내리는 특별한 은사를 보게 됩니다.

 

사도들은 사도 바오로의 표현과 같이 이상한 언어들로 말하게 되고, 병고치는 은사도 받게 됩니다. 옛날, 사도들에게는 이렇게 하느님의 성령을 받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우리는 세례도 받고 견진도 받았지만 성령을 받았습니까? 견진성사로 7가지 은사를 받는다는데 그러면 우리는 무슨 은사를 받았습니까?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이 성령을 받으면 병 고치는 능력,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능력 등 아주 다양한 은사를 받게 됩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두 분, 세 분. 사도 바오로는 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 자체가 성령의 은혜다." 사도 바오로는 짐승의 위험, 수없이 조난 사고와 투옥을 당하지만 모든 것이 성령의 은사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성령의 은사를 받았을까? 오늘 복음에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3절)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의 은사는 무엇보다도 죄를 용서받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가장 큰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는 고백성사, 너무 간단하고 쉬워서 용서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일찌기 나아만은 소녀가 "그분에게 가보시면 나병을 고쳐 주실텐데요," 라고 하는 말을 듣고 먼길을 떠나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엘리사는 시종을 시켜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시오," 라는 처방을 내립니다. 그랬더니 나아만은 화가 났습니다. "먼 길을 왔는데, 겨우 졸졸 흐르는 요르단 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그 때 그의 똑똑한 부하가 충언을 합니다. "예언자께서 어려운 일을 시키셨더라면 기꺼이 하셨을 텐데, 요르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는 것, 그게 무엇이 그렇게 힘이 듭니까?" 훌륭한 장군은 똑똑한 부하의 말을 들을 줄 압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은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고 나병이 낳았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잘못한 죄를 뉘우치고 고백하면 용서 받는다는 것, 너무 간단하고 쉬워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렵게 고백소를 찾았는데, 신부님이 보속으로 주모경 3번만 하라고 하시니까, 주모경 3번만 하면 죄를 용서받는 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죄 때문에 아파 본 사람이면 압니다. 불교에서는 죄가 용서되지 않습니다.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를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애에 가서 갚아야 되고, 그래도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애에... 다람쥐 체바퀴 돌듯 윤회되어 갚아야 합니다.

 

 "쇼 씽크" 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감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교묘하게 자기 이익을 챙기면서 까딱 잘못하면 죽어가도 모르게 하는 간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30년 40년간 복역한 모범수에게 사면과 가석방을 결정하는 사면 위원회가 있었습니다.

 

번번히 사면 위원회에서 가석방이 부결되는 것을 40번 당한 주인공이, 마침내 사면 위원회의 "이제 사회에 나가서 당신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화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더 이상 사면 위원회를 믿지 않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괴롭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죄를 지은 소년은 가고 늙은이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지은 작은 죄가 40년을 감옥에 살아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이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는 빙점에서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부부가 아들 딸 낳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하는 딸이 죽습니다. 그 시간에 부인은 남편아닌 외간 남자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고 있습니다. 

 

주인공 게이조는 산부인과 의사인 친구로부터 "당신 딸을 죽인 사형수의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 는 제안을 받습니다. 게이조는 친구에게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보여주고 부인에게는 '네가 다방에서 노닥 거릴 때 딸이 죽었다.' 라는 것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입양한 요오꼬가 잘 자라다가 부인이 요오꼬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어린 요오꼬는 부모의 갈등에 괴로워하다 유서를 쓰고 죽을 결심을 합니다.

 

 "저는 죄없이 열심히 살려고 하였습니다. 제 아버지가 언니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것 때문에 저는 더 이상 살아 갈 힘이 없습니다."

 

요오꼬는 자살 미수에 그치고,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가 "요오꼬는 살인범의 딸이 아니었다. 네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용서하고 실천하는지 보려고 했다." 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시험하고 복수하고자 하는 음모와 계략이 얽혀서 아무 죄도 없는 요오꼬가 희생당할 뻔 하게 됩니다.

 

이 소설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어린 요오꼬가 부모를 용서하고 게이조가 친구와 부인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느끼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했다는 것을 느끼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못해서 고통을 느끼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용서해 줄 수 있으면 성령의 평화를 느낍니다.

 

이상한 언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외국어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언어가 있습니다. 영어, 중국어, 독어 등등... 언어를 알아야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이런 언어를 쓰십니까? 라틴어, 불어, 방언입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언어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무슨 언어로 말할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음으로 하시면 됩니다. 마음의 언어는 짐승들과도 통합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짓는 소리만 들어도 압니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기가 왜 우는지 압니다.

 

마음이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마음이 가장 훌륭한 언어이고, 마음으로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병고치는 은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병고치는 의사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습니다. 밥을 먹다가도 휴대폰이 울리면 뛰어가야 되고, 피냄새와 고름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병고치는 은사보다 병에 안 걸리는 은사가 훨씬 더 값집니다.

 

제가 학생시절에 질병에 대한 두꺼운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두꺼운 책을 보면서, 이 많은 병에 걸리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들에는 나의 지성..나와 인연을 맺은 부모 친척 친구 등등... 그런데 어떤 것이 내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거울을 보세요. 왜 내 얼굴인데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는지... 내성격은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미가 코끼리에게 붙어서 코끼리와 함께 흔들다리를 건너고 나서 "내가 다리를 흔들었다." 고 동료 개미에게 자랑을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잘난체 합니다. 마치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한 것처럼 말합니다. 마치 자기가 없으면 큰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일을 돌아 봅시다. 특히 어려울 때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그 어려움을 따라가 보면 나 스스로도 놀랍니다.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함께 해 준 것입니다. 코끼리보다 더 크신 성령이 나와 함께 해 주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 깨달음조차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은 그 보이지 않는 코끼리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능력보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할 때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 때, 여러분도 잘못을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