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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척박한 땅을 하늘 공원으로 / 전원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6 조회수694 추천수8 반대(0) 신고

 성체 성사의 삶

 

서울 한 귀퉁이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서울 시민이 쏟아 낸 쓰레기로 여의도만한 규모의 섬이 되어버린 곳. 한때는 난꽃과 영지가 명물이라고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난지도(蘭芝島).

 

 15년 전만 해도 그 곳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서울 시민의 삶의 온갖 더러운 찌꺼기들이 모여들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기억조차 아련하지만 사제의 꿈을 키우던 신학교 시절, 난지도에서의 노동 체험은 저에게 세상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마치 그 곳은 화려한 인간 사회 이면에 인간의 탐욕과 죄악이 산더미처럼 쌓여 악취를 풍기는 것만 같았습니다. 썩은 물과 유독가스가 흐르는 죽어있는 땅. 황량하게 바람만이 불던 폐허의 쓰레기더미. 치유될 수 없는 저주의 장소처럼 철저하게 외면당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도저히 재생될 것 같지 않던 이런 난지도에 쓰레기 투여가 중지되고 새 흙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빈 터를 찾던 씨앗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그 곳에서 움을 틔우고 점차 작은 짐승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뻐꾸기와 휘파람새가 둥지를 틀고 족제비와 맹꽁이들이 서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난지도는 찾아가고픈 장소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이러한 위대한 자연의 힘을 바라보면서 어느 소설가는 "난지도는 지금 '오선지 위에 그려진 자연의 교향곡'을 힘차게 연주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성체 성사는 죽음의 세상을 생명으로 바꾸는 '하느님의 힘찬 교향곡'입니다. 마치 난지도의 쓰레기더미처럼 죄악과 탐욕으로 죽어있는 이 땅에 씨앗 하나가 날아와 움을 틔우고 숲을 이루어, 공중의 새들이 깃드는 아름다운 공원을 만드는 것이 성체 성사입니다. 우리들 삶의 악취나는 곳에 신선한 생명수가 다시 흐르게하고, 상처 난 영혼에 새살을 돋게 하는 회복과 치유의 손길, 해방과 구원의 선포가 바로 성체 성사입니다.

 

 성체 안에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세리, 죄인, 가난한 이, 병든 이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가 마침내는 당신 몸마저 내어주신 예수님의 전 생애가 담겨있습니다.

 

 탄생에서부터 공생활까지 예수님의 지상 삶은 한 조각 빵의 형상으로 부서져 우리에게 '이는 내 몸'으로 건네진 성체 자체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이루시고 성령을 통하여 모든 믿는 이들을 축복하신 사건이 우리를 위한 성체 성사의 완성입니다.

 

 이로써 사람들은 생명을 얻어 숨을 쉬며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서로 나누고 섬기면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성체 성사가 교회의 '모든 성사의 정점이요, 완성'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성체 성사의 삶은 예수님처럼 '수렴-부서짐-축복-나눔'의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최후의 만찬으로 모아지듯이 일상 안에서의 우리의 모든 수고와 슬픔, 아픔과 고통, 상처와 죄스러움은 미사를 통해 성체 안으로 봉헌됩니다. 우리의 삶은 그분 안에서 부서져 빵이 되고, 성령을 통하여 축복되어 다시 우리에게 건네집니다. 그분의 축복과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며, 그분의 구원의 신비를 나눔으로써 성체 성사는 완성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일상을 엮어내는 가정과 이웃 공동체는 성체 성사의 출발점이면서 동시에 완성의 장소입니다. 이러한 순환적 사랑의 성사를 통하여 내 삶은 온통 그분처럼 성체가 되어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의 인생에 축복이 되어주는 생명의 선물이 됩니다.

 

 우리 자신이 겨자씨가 되어 인간의 탐욕으로 상처입고 버려진 척박한 땅에 싹을 돋우고, 더불어 숲을 이루어 공중의 새가 깃들이는 하늘공원을 만들어 가는 것이 성체 성사의 삶입니다.

 

 우리가 매일 받아 모시는 작은 성체는 내 안에서 세상을 향해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소공동체 길잡이 6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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