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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분노하도록 내버려 두라!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8 조회수828 추천수8 반대(0) 신고

 

 

 

『고해성사(Sakramente)』中
안셀름 그륀(Anselm Grun)신부님

 

 

나는 때때로 수강자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혹시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습니까?
아니면, 용서하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있습니까?
이제 그들이 누구인지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누군가를 생각해 낸다. 그러나 쉽게 떠올린 그 얼굴과 함께 그들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한다.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과의 부담스러운 관계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화해를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 노력이 도움이 되지 못했을 수도, 아니면 그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나 커서 고해성사를 통해서도 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들이 떠올린 그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또 끼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 사람과 화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많은 힘이 소진될 것인지도 감지하고 있다.

 

 

내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의식적으로 떨쳐 버린다고 해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분노를 의식적으로 억압해 버린다고 해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분노 때문에 생긴 거림감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건강한 거리가 유지될 때 비로서 그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파괴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라. 내 힘으로 그를 변화시키려 하지 마라.

 

 

타인과 화해하는 첫걸음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것,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포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가 저지른 일은 그의 문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그의 행위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나의 상처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벗어나, 그에게서 받은 상처를 그와 상관없이 당당하게 살겠다는 의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화해로 가는 둘째 걸음은 다시 그와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와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나뿐만 아니라 그 역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화를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화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화를 거부한 그를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더 이상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그와 화해할 수 있다.

 

 

그를 내버려 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처받은 나를 나 자신과, 내가 겪은 지난날들과 화해시키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과 화해했을 때 비로서, 언젠가 내게 돌아올 그를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성원 사이의 불화는 곧 공동체의 와해를 의미한다. 공동체 성원 모두가 사소한 불화에 대해서도 화해 의지를 가질 때, 그리고 구체적인 화해 과정이 실현될 때, 공동체는 유지될 수 있다. 가족이든, 기업이든, 수도회든, 공동체의 존립은 성원 상호간의 용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 너무 좋으신 말씀, 그저~ 아♡멘으로 크게 응답합니다. 주님께 사랑받고 용서받아온 시간들이 더 많았음을 감사드립니다. 마음 속의 분노, 불행감, 내면의 공허함과 불안감등을 어떻게 표출하고 어떻게 해소시켜야 하는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주님께 그 헌 보따리들(*^^*)을 가져가면, 새 보따리들(*^^*)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판단과 변화의 몫은 주님께 맡겨드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몫에 충실한 기쁜 하루 되십시오. *^^*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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