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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절실한 언어, 희망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6-06-08 조회수1,020 추천수17 반대(0) 신고
6월 9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마르코 12장 35-37절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가장 절실한 언어, 희망>


미사 다녀오다 운전 중에 우연히 들은 소식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의 저자이신 신영복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오늘 마지막 강연을 하신답니다.


암울했던 지난 세월, 단지 ‘확고한 신념’, ‘맑은 정신’,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외칠 수 있는 ‘의로움’을 지녔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세월을 차디찬 감방에서 보내셨던 분입니다. 1988년 가석방된 후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신 교수님께서 이제 후학들과 함께 했던 17년간의 세월을 마무리 짓는 고별강연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궁금증에 확인해보니 한 말씀 한 말씀이 어찌 그리 가슴에 사무치는 말씀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인지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머리만 있어서는 안 되고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비판적인 담론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인간적 애정이 담겨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담론과 사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언어가 바로 ‘희망’입니다. 인내가 현재의 상황을 무작정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면 희망은 견디기는 견디되 곤경의 건너편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었답니다. 석과란 앙상한 나뭇가지에 마지막으로 남은 과실이라는 뜻이지요. 결국 석과불식을 풀이하면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 더욱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씨 과실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겨울의 입구에서 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나무는 비극의 표상이며 절망의 상징이지만 그 앙상한 가지 끝에 달려있는 빨간 감 한 개는 글자 그대로 ‘희망’입니다.”


제게 가장 큰 감동과 긴 여운을 남긴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한 기자가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교수님께서는 20년간이나 감옥생활을 거치셨는데도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계시지 않은 듯합니다.”


교수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제가 출소하니 서대문 구치소도 없어졌고, 그 무시무시하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도 박정희 대통령도 돌아가셨더군요. 제가 처음 취조를 받던 남산 수도경비사령부도 한옥마을로 바뀌고,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도 잔디가 푸른 체육구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상황에서 증오를 갖는 것은 증오의 대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역사의 격동기에는 일정한 숫자의 사람들이 감옥을 채우는 법이고 저는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우리 사회가 겪어나가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제가 해당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내 속의 사회, 시대의 모습을 좀 더 많이, 넓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개인적인 감정으로 환원해 갖지 않도록 노력하지요.”


감옥에서 보낸 20년의 세월이 당신에게는 의미로 충만했던 대학 학창시절이었다고 고백하는 교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가 정말 큰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이 암시하는 바같이 유다인들은 다윗가문에서 출생한 메시아, 힘과 능력을 갖춘 정치인으로서의 메시아, 결국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들을 해방시켜줄 해결사로서의 메시아, 그래서 이스라엘을 온 세상의 중심이 되게 하는 정복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의 허무맹랑한 기대를 무너트리십니다. 그들의 그릇된 메시아관에 반박하십니다. 당신은 철저하게도 비폭력주의자로 처신하십니다. 완벽한 평화주의자이십니다.


참된 메시아는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이 세상을 초월하는 왕입니다. 다윗 왕을 훨씬 능가하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시리아와 페르시아,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세상 전체를 다스리실 왕 중의 왕이십니다.


오늘 복음 말미에서 그런 만왕의 왕, 온 누리의 주님께서 어찌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고,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잠시 지나갈 이 현세에 기반을 둔 왕이 아니라 영원한 도성,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기반을 둔 왕이십니다.


그런데 그 만왕의 왕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왕, 힘의 논리에 의존하는 그런 왕이 절대 아니셨습니다. 거듭되는 폭력과 압제, 비인간화 앞에서도 끝까지 견뎌내며, 끝까지 용서하며, 박해자마저 사랑으로 감싸 안은 사랑의 왕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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