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9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코 12,35-37)
David himself, inspired by the Holy Spirit, said:
The Lord said to my lord, ‘Sit at my right hand until I place your enemies under your feet.’ David himself calls him ‘lord’; so how is he his son?”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으로 고백한 사실을 지적하십니다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박해와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입니다. 당신은 세상의 박해와 미움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과 한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8-19).
|
영웅본색
제가 고등학교 때, 학생들에게 홍콩영화가 인기였습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폭력으로 시작하여, 폭력으로 끝이 났지만, 저희들에게는 그 폭력도 의리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 되었습니다.
그 중 ‘영웅본색’ 이란 영화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이 영화로 주윤발, 적룡, 장국영의 이름이 학생들에게 알려졌고, 인기 짱이었습니다. 주윤발과 적룡은 조직폭력배의 간부급이었고, 호형호제할 정도로 의리가 좋았습니다. 다른 조직에서도 감히, 손 데지 못하는 그런 거물급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적룡은 모종의 거래를 하기 위해 접선장소로 가던 중, 부하의 배신으로 경찰에 붙잡혀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주윤발은 친구 적룡을 대신하여 복수를 하던 중에 그만 다리에 총을 맞아 평생 절름발이로 살게 됩니다.
다리를 다친 후에는 감옥에 간 친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조직의 부하들의 냉대와 조롱, 수모를 수없이 받으면서도 참고 또 참습니다. ‘친구가 돌아오면, 이 수모를 다 갚아 주겠다.’는 마음이었기에,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친구가 돌아왔지만, 친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복수하기는커녕, 조직을 떠나 평범하게 살아가겠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때, 주윤발은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누구 때문에 그 수모와 멸시를 참고 또 참을 수 있었는지 알려주고는 혼자서 복수를 하려합니다.
주윤발의 말을 들은 적룡은 주윤발과 함께 가서 자신과 친구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강론을 준비하다보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 곧 주윤발이 죽어가며 장국영에게 절규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형제란... 형제란... 탕탕탕... 윽....)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메시아가 오면 잃어버린 다윗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오면 피지배자로서 자신들의 당하는 수모와 조롱, 억업을 풀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을 대신해 복수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지만, 그 메시아는 자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힘 있고 권능의 메시아가 아니라, 낮은자들의 메시아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인 메시아였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수천 년 기다려온 메시아였지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메시아가 되지 못했고, 또한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메시아는 오직,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영광을 회복해야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이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떠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면, 왜 기다리는 것입니까? 단순히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예수님의 힘으로 복수하기 위해서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시면 더 이상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낮은자의 하느님이요, 힘없고 죄인들의 친구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분이십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힘없고 죄인인 우리와 함께 살아가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복수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려움, 아픔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어려움을... 그 아픔을 함께 하심으로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수해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는 믿음을 갖고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백 있는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