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과 나의 현존(現存)" (집회48,1-14 마태6,7-15) | |||
---|---|---|---|---|
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06-06-22 | 조회수655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말씀)
"하느님과 나의 현존(現存)"
집회48,1-14 마태6,7-15
"하느님과 나의 현존(現存)"
하느님 현존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각자의 현존 정도 역시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희미하게 현존하여 잘 기억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단 한 번의 만남으로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생생히 그 자신으로 현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현존 의식 얼마나 투명한지 즉시 감지하게 됩니다.
마치 아버지 면전에서 이야기 하는 듯 느껴집니다.
예수님께 아버지의 존재는 너무나 간절하고 절실한 현실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 현존 의식 또렷할수록 군더더기 빈말들의 기도는 생략되고 본질적 참말의 기도만 남게 됩니다.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께는 너무나 자명한 우선적 현실이었고, 일상에서의 현실적 필요인 일용할 양식과 죄의 용서, 유혹과 악에서의 구출도 예수님께는 너무나 절실한 현안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현존 역시 늘 아버지께 생생한 현실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온 마음, 온 힘, 온 정신을 다하여 끊임없이 바칠 때, 나 또한 역시 아버지의 생생한 현존 안에서 나로서 생생히 현존하면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 예언자의 현존 얼마나 강렬하게 느껴집니까?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합니다.
아버지의 현존 의식 강렬할수록, 우리 또한 강렬히 나로 현존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나의 현존은 주님의 현존이 됩니다. 바오로의 고백이 그 좋은 증거입니다.
주님의 생생한 현존 안에서 생생히 나로 현존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