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34) 말씀지기> 키아라와 클라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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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자 | 작성일2006-07-17 | 조회수58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 1,10ㅡ17 복 음 마태 10,34ㅡ11,1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37ㅡ41)
1212년의 주님 수난 성지주일 저녁, 키아라 오프레두치오라는 18세의 한 이탈리아 소녀가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소녀는 미리 약속해 둔 장소인 쓰러져가는 어느 낡은 성당으로 가서 프란치스코 수사를 만났습니다.
수사는 키아라의 머리카락을 자른 뒤 거친 수도복을 입혀주고, 그녀에게서 일생을 '가난한 부인회'에 봉헌하겠다는 서약을 받습니다.
소녀의 가족들이 경악하여 집으로 데려오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키아라의 여동생까지 수도회에 들어가자 가족들은 무장한 남자 12명을 보내어 자매를 붙잡아 오게 했습니다. 그때 두 자매는 성당 제대를 꼭 붙들고 기도했는데, 동생의 몸이 점점 무거워지더니 옴쭉달싹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은 두 자매를 가엾이 여기게 되었습니다.
부유하고 아름다웠던 이 아가씨, 클라라는 구혼자들 중에서 배필을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안락하고 풍요로운 생활보다 봉쇄수도원의 엄격한 생활을 선택했지요. 이런 결정이 가족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였지만, 클라라는 하느님께서 그녀의 삶에 다른 비전을 가지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삶은, 큰 희생이 따르지만 무수한 은총으로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클라라는 자기 목숨을 "잃었지만" 주님 안에서 목숨을 "얻었습니다". (마태 10,39)
클라라는 자기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창설한 수도회에 입회하기 위해 세상 영화를 포기한 보헤미아의 한 공주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 얼마나 훌륭하고 칭찬할 만한 맞바꾸기입니까. 영원한 것을 위해서 한시적인 것을 버리고, 세상 행복보다 천상 행복을 선택하며, 하나 대신 백배로 받고, 축복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이니까요."
수만가지의 세상 유혹이 예수님게서 권하시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 유혹들이 설사 하느님의 길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안에서 불만이 일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실재(實在)로 다가오지 않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기쁨보다는 우리가 포기하려고 하는 보다 실체적인 것들이 우리 눈에는 너무 자주, 더 분명하게 보이니까요.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분께서 주시는 양식과 위안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의 삶을 간단히 옆으로 밀어놓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에 잠겨 있으면,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 안에서 우리 자신을 정말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늘 저의 삶을 바칩니다. 한순간도 빠짐없이 당신께 복종하고자 하는 타오르는 열망으로 저를 채워 주십시오. 복종하는 삶의 단순함을 받아들이도록 도와 주시어, 당신의 영광이 저를 통해 빛나고 이웃들이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십시오."
<말씀지기 2006/7 : 7월 17일 월요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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