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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이하학적 은혜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17 조회수811 추천수12 반대(0) 신고

 

 

 

                          형이하학적 은혜



   언젠가 괴물 같은 피정을 무섭게 받을 때의 일이다. 거기선 신부의 권위고 뭐고 없었고, 처음부터 시계를 뺏더니만 이리저리 뺑뺑이를 돌려 가며 달구치는데 사람 참 미칠 일이었다. 난 원래 물을 갈아 먹으면 한 사흘은 화장실을 못 가는 묘한 습성이 있었다.


   그때도 예외는 아니었고, 일이 또 꼬이느라고 피정 전날부터 화장실을 하루 건너뛰고 있었다. 드디어 피정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기별이 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웬 형제가 붙잡더니만 면담 좀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이 두 번째로 꼬이게 됐다. 당시의 피정에선 식사 후의 짧은 시간만이 용변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점심때는 일부러 문 옆의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끝나기가 무섭게 일착으로 화장실에 가자는 속셈이었다. 게다가 나는 일이 급해지고 있었다.


   식사가 다 끝날 무렵이었다. 이제 일어서서 기도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회장이 피정자를 죽 훑어보더니만 느닷없이 “강길웅 신부형제님, 식탁봉사 하십쇼!“ 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일진이 사나워 뭐가 잘 안 풀린다고 했더니, 나 혼자서 오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밥그릇과 반찬그릇 등을 치워야만 했다. 이것이 일이 꼬이는 세 번째의 사건이었다. 서둘러 봉사를 끝내고 화장실로 달려 갔으나 바지를 내리기가 무섭게 강의 시작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그 피정은 누구 하나라도 늦게 오면 전원이 서서 그를 기다리는 고약한 제도가 있어서, 단 1분이라도 늦었다간 견디기 어려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을 또 못 보고 강의실로 달려가야 했으니, 이제 강의는 귀에 안 들어오고 머리와 몸은 온통 화장실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날은 저녁식사 시간이 유난히도 늦어지고 있었다. 썩을 놈의 강의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이윽고 식사 시간이 돌아왔을 때는 너무도 긴 하루 였으며 견디기 어려운 지옥 같은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서둘진 않았으며 악착같이 먹을 것은 다 먹고 점잖게 화장실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 또 그 귀에 익은 독설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강길웅 신부형제님, 식탁봉사 하십쇼!”

   이건 아예 회장이 아니라 ‘웬수’였다. 다른 때라면 며칠 내내 식탁봉사 하래도 불평할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경우가 아주 다르지 않은가? 주둥이에서 욕이 막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그릇을 치우는데, 이번엔 봉사가 끝나기도 전에 강의 시작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아주 혼수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누가 옆에서 살짝만 건드려도 좍 싸버릴 것 같은 위기일발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묵주를 꼭 쥐고 참아 보려 해도 이미 사태는 한계 그너머에 와있었다. 드디어 용기를 내어 회장 앞으로 나가서 일이 급한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그 '웬수‘가 의외로 어서 다녀오라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화장실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다.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으며 중간에 쏟아질 것만 같아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화장실에 도착하여 시원하게 배설시킬 수 있었던 그 감격, 그은혜.


   피정이란 결국 오물을 버리고 하느님의 성령으로 새롭게 무장하는 것이 아니던가. 많은 피정을 했었지만 그때의 그 형이하학적 은혜의 피정만큼 나에게 감동으로 남아 있는 피정도 없다.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중 백조...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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