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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0 조회수636 추천수4 반대(0) 신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안식은 우리 삶의 목표요, 삶의 종착점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영혼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안식은 무엇인가? 안식은 하느님 자신이시다. 즉 우리의 안식은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삶의 긍극적인 목표는 하느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시편은 하느님은 "나의 안식처 또는 나의 피난처"라고 불렀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의 안식처인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고 초대하신다. 즉 우리 모두를 지혜의 잔치에로 초대하신다.

 

인간에게 참다운 음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느님을 잘 아는 것이요,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로 알아 보는 것이며, 하느님이 나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원을 아는 것이 인간의 참다운 음식이다. 이것을 알 때만이 인간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떠나서는 그 어디에 가도 인간은 불안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없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겠으며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 주어 참다운 안식을 얻게 해주려면 엄마를 찾아 주는 일 밖에 없다.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또 어디에 가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무조건 찾아 헤매는 하루 하루의 삶은 슬픔과 절망만을 가져다 주는 무거운 짐이 되고 고생만 하는 삶일 것이고 나중에는 자포자기 하고 타락한 삶을 살 위험도 있다.

 

"나에게 있어 당신은 어디 계시더이까. 어디로 가셨더이까. 나를 내신 분이 당신 아니시오며 길짐승과 구별하사 하늘의 날짐승에서 더 지혜로운 나를 만드신 분이 당신 아니시오니까. 그렇건마는 나는 어둠 속과 살얼음 위를 돌아다니며 나 밖에서 당신을 찾았으나 내 마음 안의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였사오니 바다의 심연 속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리의 발견에 대해선 허탕 짚고 절망하는 것이었습니다."(육권 일장)라는 성 아우구스띠노는 고백은 바로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며 허덕이는 인간을 대변한 것이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어디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길을 잃고 헤메였다. 그래서 삶 자체가 모두 힘들고 무거운 짐이었다. 길을 잃고 헤메는 인간을 보시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초대하신다.

 

집회서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아, 나에게로 와서 내 학교에 들어 오라. 어찌하여 지혜를 갖지 못한 채 불평만 하고 너희 영혼의 갈증을 풀 생각을 하지 않느냐? 나 이제 결론 삼아 말한다. 지혜를 돈으로 살 생각은 말아라. 네 목에 지혜의 멍에를 씌워라. 그리고 네 마음에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라. 지혜는 바로 네 곁에 있다. 눈을 바로 뜨고 보아라. 내가 얼마나 적은 노력으로 큰 평화를 얻었는가를!"(집회 51.23-27)

 

우리의 안식처는 젖 떨어진 어린이가 어미 품에 안길 때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시편 작가는  "주여 잘난체 하는 마음 내게 없삽고, 눈만 높은 이 몸도 아니오이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시편130)라고 노래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안식처는 하느님의 품이다. 즉 우리의 안식처는 어떤 장소도 아니고, 어느 인간도 아니고, 재물이나 권력도 아닌 나의 창조이신 하느님의 품이다. 그래서 시편은 "나의 안식처"라고 말하였다.

 

우리가 정말로 안식을 취하려면 나의 안식처인 하느님을 찾아 떠나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을 모른다. 그 길을 나에게 알려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그래서 그분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 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배우고 진리를 배우고 생명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복음을 통해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라고 초대하시면서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멍에란 무엇인가? 멍에란 소가 짐이나 수레를 끌기 위해 목에 얹어 놓은 연장이다. 그것이 있어야 수레를 끌 수 있다. 예수님이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께로 나를 데려가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그 길을 알고 있고 우리는 그 길을 걸을 때만이 우리의 안식처인 아버지께 가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멍에란 무엇인가? 그 멍에란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나를 아버지께로 데려가는 멍에이기  때문에 내가 지고 가야 한다. 멍에를 지고 간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지혜를 배우고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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