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은 나의 목자 ----- 2006.7.23 연중 제16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3 조회수619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7.23 연중 제16주일                                              

예레23,1-6 에페2,13-18 마르6,30-34

                                                          

 

 

 

 

 

주님은 나의 목자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를 신명나게 불렀습니다.

 

또 여기 수도자들은 오늘 아침 새벽기도 초대송 후렴,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 목장의 양떼이로세!

  어서 와 조배 드리세.” 를 힘차게 노래 불렀습니다.


착한 목자 주님은 오늘 파란 풀밭 요셉 수도원,

성체성사 물터로 고이 쉬라 우리를 이끌어 주시니

우리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목자,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너무나 자명한 진리를

까맣게 잊고 지내기에 온갖 문제들이 파생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영혼입니다.
영혼 있어 영성 있고 영적 인간입니다.
여러분의 영혼, 얼마나 하느님을 목말라 하는지요?


문득 생각나는 여러 시편들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나를 구하신 하느님께 기뻐뛰노나니.”
“주님, 저의 하느님, 제 영혼이 주님을 목말라하나이다.

  이 몸이 주님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주 계시는 곳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밖에도 영혼과 하느님간의 긴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시편들 무수합니다.
애당초 하느님 향해 지음 받은 인간이요 영혼입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영혼도 살고 육신도 삽니다.
하느님을 떠나면, 하느님을 잊으면, 영혼도, 마음도 죽습니다.
황량하고 어두운 내면이 됩니다.
참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영혼의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육적 욕망의 사람들만 가득한 오늘의 세상 같습니다.


하느님을 밀어낸 그 자리에 돈 욕심이 가득 차 있고,

영혼을 밀어 낸 그 자리에 육신의 욕망이 가득 차 있고,

기도의 자리를 밀어 낸 그 자리에 일과 놀이들만 가득합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삽니다.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

살아있다 하나 실상 영적으로 시들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무한한 욕심에서, 삶의 혼란과 무질서, 복잡함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 목자, 아쉬울 것 없습니다.
주님을 찾아 만나야 그 영혼과 육신 빛과 생명, 희망으로 넘칩니다.
삶에 의미가 주어지고 안정과 평화, 질서가 이룩됩니다.


삶은 장애물 경주와도 같습니다.
보이는 불충실한 목자들이나 사람들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넘어지더라도 즉시 일어나십시오.


보이는 불충실한 목자들이나 사람들 넘어,

우리의 착한 목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이래야 교회 공동생활에 냉담하지 않고 항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교회 공동체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믿음이 깊어질수록 은혜도 크지만 걸림돌도 많습니다.

 

이 장애물들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착한 목자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 장애물들을 피해 냉담해 버리면

영적 성장도, 영적 성숙도 멈춰버립니다.

 

태양을 덮고 있는 짙은 구름에 좌절하지 않고

그 구름 넘어 빛나는 태양을 바라봐야 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자나 깨나

착한 목자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만 시선을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불행하여라,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무책임한 악한 목자들에 분노하던 예레미야,

그 어둔 현실 넘어

그날의 그 목자를 내다보며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습니까?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여,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이사야의 착한 목자의 출현에 대한 예언,

그대로 우리의 착한 목자,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통해서 실현되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중심을 잃어 헤매거나 방황하지 않고,

우리 삶의 중심이자 착한 목자 주님께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립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것을 구체화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적당한 시간,

적당한 장소에서,

개별적으로든 공동으로든 주님 만나는 것을 습관화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말씀이 이에 대한 좋은 증거입니다.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사도들 제멋대로 활동하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루가 끝나면 함께 모여 주님께 보고하며 점검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루의 일을 나눈 다음에는 관상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매일이 어려우면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적당한 시간, 적당한 장소에서 주님 앞에 가족이 함께 모여,

그 동안 일을 나누며 외딴 곳 자기자리에서

관상 휴식을 취한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는지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주님 앞에 함께 모일 때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전 존재를 흠뻑 적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드시고

공동체의 형제들을 가르는 장벽과 적개심을 허무십니다.

 

당신 안에서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평화를 이룩하십니다.

 

바로 이 성체성사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수도원이든 가정이든

이런 착한 목자 주님을 공동체의 중심에 모시고 끊임없이 지도 받아야,

비로소 서로간의 평화와 일치요 화해입니다.

배움과 관상 휴식은 실천으로 열매 맺어야 비로소 완성입니다.
메타노이아(metanoia) 회개는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로,

이어 디아코니아(diakonia) 봉사로 열매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주변의 필요에 응답하는 연민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외딴 곳을 찾아 떠난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수많은 군중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처신이 얼마나 큰 가르침인지요!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측은지심, 종교인 이전에 인간이 지녀야 할 근본 마음입니다.
군중을 향한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즉시 휴식을 취소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육신의 음식에 앞서 하느님 말씀을 우선 먹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도 이들 군중은 지혜로웠고 행복했습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찾아 만났고

먼저 하느님의 말씀으로 배불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온갖 세상 것들에 빠져

목자 잃고 길 잃어 방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참 목자 주님을 찾아 만나지 않으면 결코 안식도 행복도 없습니다.
삶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복된 미사시간,

착한 목자 주님은 우리의 영육을

빛과 생명,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시며 참된 안식을 주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