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46) 떠나지 않는 향기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07-29 조회수696 추천수6 반대(0) 신고

 

 

님에게서 나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님의 귀에 내 이름도 속삭이지 않았습니다.

님께서 이별을 고하실 때

나는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나무들 그림자가 엇비슷이 비껴드는 우물가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질항아리 가득히 물을 긷던 여인들이

내게 소리쳤습니다.

"같이 가요. 아침이 지나고 낮이 됩니다"

그러나 나는 멍하니

생각에 잠긴 채 머뭇거릴 뿐이었습니다.

 

님이 오셨을 때

나는 그 발소리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님이 나를 보았을 때

그 눈은 슬픔에 차 있었습니다.

님은 낮은 목소리로

"아아, 나는 나그네 길에 목이 말랐네"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음성은 지쳐 있었습니다.

 

나는 놀라 백일몽에서 깨어나

님이 내미신 양손에 항아리의 물을 부었습니다.

나뭇잎은 머리 위에서 사운거리고

뻐꾸기가 어느 그늘에선가 노래했습니다.

바브라꽃 향기는 길모퉁이로 여울져 왔습니다.

 

님께서 내게 이름을 물으셨을 때

나는 부끄러워 아무 말 못 하고 서 있었습니다.

진실로 나는 님이 기억하실 만한 무슨 일을 했는지

님께 마실 물을 올려 목 축여 드린 추억뿐

가슴에 남아 내 마음 부드럽게 감싸 줍니다.

아침이 곧 지나가면

새들은 졸리운 음률로 노래하고

니임나무 잎은 머리 위에서 살랑거립니다.

나는 앉은 채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ㅡ 타고르 :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송가)중에서 54편 ㅡ

 

당신에게 청할 게 없습니다.

당신의 귀에 이름조차 비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떠나갈 때면 말없이 서 있을 뿐입니다.

여인들은 자줏빛 항아리에 넘치도록 물을 길어 이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인들은 저를 불러 외쳤습니다.

"우리를 따라 오라. 아침은 지나 한낮이 가까워 오느니"

하지만 저는 쓸쓸히 머뭇거리며 흐릿한 명상에 빠져 한동안 벗어날 줄 몰랐습니다.

 

당신이 오시건만 당신의 발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눈길이 제게 비쳤을 때 당신의 눈은 슬퍼보였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피로하여 나직했습니다.

"아, 나는 목마른 나그네로다."

한낮의 꿈에서 깨어나 내 항아리의 물을 당신의 벌린 양 손바닥에 부었습니다.

머리 위에서는 나뭇잎이 바삭이고 뻐꾸기는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숲에서 노래를 부르고 굽이진 길을 돌아 꽃향기는 퍼져 나옵니다.

 

당신이 이름을 물으실때 부끄러워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진실로 당신이 기억하실 만한 일을 한 것이 있으리까?

하지만 당신의 목을 축일까 하고 당신에게 물을 올린 추억만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향기처럼 간직할 뿐입니다.

아침 때도 지나 향나무 잎은 머리 위에서 바삭이고 새는 지루한 가락을 노래하고 나는 앉아서 명상에 잠깁니다.

 

       ㅡ타고르 : 기탄잘리(신에게 바치는 송가)중에서 54편ㅡ

 

***오늘은 제가 가지고 있는 번역자가 다른 두 개의 기탄잘리에 실려 있는 같은 내용의 54편을 함께 올려보았습니다. 참 재미있지요? 번역자에 따라서 이렇게 같은 작품이 분위기가 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하지만 품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은 같습니다.

결미부분이 아주 조금 다르긴 하지만요. 먼저 것은 좀 더 잘 다듬어진 시적(詩的)인 맛을 주는 것 같고, 나중 것은  경건하고 신적(神的)인 것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두 가지 느낌을 동시에 맛보시라고 함께 올려보았습니다. 기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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