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양승국 신부님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장
후배 사제들의 첫 미사 참석을 위해 남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새사제들을 향한 ''아버지 신부님들''의 진심어린
충고말씀은 아직도 제 귓가를 울리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사제들에게도 훌륭한 삶의 지침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고해소 안에서 화날 일이 있더라도 절대 화내지 마십시오.
한번 혼난 신자들이 다시 고백소를 찾겠습니까?
사제로서 가장 좋은 보속이려니 생각하시고 부디 꾹꾹 눌러 참으십
가끔 신랑 신부가 늦게 도착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사자들에게는 일생에 한번 있는 가장 큰 축복의 순간이 아니겠습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내하십시오."
"사제는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빗자루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인 마당을 다 쓴 후에
신부님, 늘 안방 한가운데 자리는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구석진 자리에 서 있는 겸손한 빗자루로 사십시오."
한평생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을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김대건 신부님 같은
첫미사를 끝내고 신자들에게 축복을 드리는 새사제들을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새사제 신분으로 사제생활을 마감한 분이지요.
김대건 신부님과 관련된 성가를 따라 부르고 있노라면
"동지사 오가던 길 삼천리 트였건만,
복음의 사도 앞에 닫혀진 조국의 문,
겨레의 잠 깨우려 애타신 그의 넋이,
이역의 별빛아래 외로이 슬펐어라."
사제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떠난 15세 어린 나이의
용기가 가상했고, 꿈은 컸지만 중학교 2학년 나이
여린 소년의 눈앞에 비춰진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습니다
낯선 풍습 안에서 살아가던 어린 소년은 숱하게도
많은 밤들을 이역의 별빛 아래 눈물지으며 보냈겠지요.
입국하자마자 오래 지나지 않아서 당국에 체포되고 맙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의연했던 김대건 신부님,
죽음의 칼날조차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김대건 신부님,
칼을 들이대는 사람에게조차 축복을 해주던 김대건 신부님이었습니다.
▒ ''아저씨, 신부님 맞아요?''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