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40>어떤 연분 / 강길웅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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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07-30 | 조회수839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어떤 연분 어떤 형제의 초대를 받아 횟집에서 식사를 할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탓으로 여러 가지 정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 형제가 얼핏 내가 차고 있는 시계를 보더니만 아주 정색을 하면서 따지듯이 덤비는 것이었다. “아따, 신부님도 그 시계 좀 바꿔 차시쇼!” 물론 그 말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웬지 괘씸하고 불쾌한 마음이 들어 나는 나대로 언성을 높히면서 그를 사정없이 나무랬다. “도대체 이 시계가 뭐 어째서 그러냐? 너는 그 대갈통을 고쳐야 해!” 돼지들이 밥 먹다가 서로 싸운다더니 우리가 마치 그 꼴이 되어 “니가 그르니, 내가 옳으니” 하면서 한바탕 옥신각신한 일이 있었다. 문제의 내 손목시계에는 대통령의 휘장인 봉황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건의 발단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이쪽 지역에선 충분히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 공무원으로서 46년 동안 봉직하고 퇴직한 아버지에게 국가에서 준 선물이었다. 나는 본래 새 것보다는 헌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집안 형편이 좀 어려웠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는 형의 교복과 교과서를 그대로 물려받아야 했고 선생으로 처음 발령받아 갈 때는 아버지의 헌 양복을 줄여 입었었다. 그때는 사실 집에 빚이 많아서 월급을 타면 거의 전액을 송금해야 했기 때문에 시계는 엄두도 못 내고 하루 세끼 밥도 고구마나 배급 밀가루로 때워야만 버틸 수가 있었다. 선생 4년 하고 군대에 갔고, 제대 후 얼마 동안도 시계없이 지내다가 언젠가 아버지의 중고시계를 넉 달 월부로 사게 되었는데 나는 그 후부터 밤이고 낮이고 늘 시계를 차고 살았다. 시계는 못 생겼어도 그것이 내 재산목록 제1호였기 때문에 특별히 정이 많이 갔었다. 그러나 그 시계도 20년을 차고 나니 문제가 자꾸 생겼다. 유리를 자주 갈았던 탓인지 방수가 되질 않았으며 날만 궂으면 시계찬다는 것이 아주 고역이었다. 그 궁상을 보고 신자들이 몇 번 새시계를 구해 주긴 했으나 ‘조강지처’ 같은 고물시계를 결코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작년이었다. 서울 다녀오던 길에 잠시 집에 들러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굴러다니는 시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길이 모셔야 할 만한 기념물도 아닌 것 같기에 노랭이 아버지한테서 공짜로 얻은 것인데 시간이 아주 잘 맞아 내 맘에 쏙 들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어떤 연분이 있는 모양이다. 천생연분 이라고 까지 말하기엔 좀 심할지 모르나 분명히 궁합이 맞는 물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시계와 만년필이 바로 그것들이다. “예수님, 상본에 보면 예수님이 지팡이를 가지셨던데, 제 말이 맞죠?”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 본당 주임)
Sussane Lundeng- ''Jeg Ser Deg Sote 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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