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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2 > 어떤 십자가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1 조회수95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어떤 십자가



   탄광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내가 어떤 산 위에 서있었다. 산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활처럼 굽어진 채 길게 뻗어 있었으며, 앞에는 평야가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쩌면 암담한 내 미래를 바라보면서 거기 멍하니 서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것이 보였다. 산줄기 맨끝의 봉우리 위에 웬 십자가가 붕하니 떠있었다.


   참 기묘한 일이었다. 몇번이고 눈을 비비고 봐도 분명히 십자가가 거기 떠있었다. 나는 괜히 흥분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기대한 사건 이었던가!   꿈에서일망정 성모님의 치맛자락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것이 어렸을 적부터의 꿈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성인성녀들처럼 나에게도 무슨 기적이 일어나기를 얼마나 은근히 기다려 왔었던가!


   그런데 그 막연한 소망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현실화되고 있었다. 나는 그냥 감격했으며 십자가를 향해서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저에게로 와주세요!” 나는 주님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으며 할 수 있으면 매달리거나 껴안아 보고도 싶었다.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십자가는 바람을 타고 나에게로 떠오고 있었으며, 그 실체는 점점 확대되어 크게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싱한 예감이 불쑥 들면서 내가 이참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저리를 쳤다. 십자가는 점점 가속화되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데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도망갈 궁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이게 웬일인가?  십자가가 마치 뼈마디 하나하나가 연결이 된 것처럼 그렇게 이어져 바람에 날리면서 오는데 ‘나는 이제 죽었다’라는 판단으로 산 위에 바짝 엎드려야 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십자가에 살짝만 부딪혀도 나는 요절이 나고 말 것 같았다.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십자가는 내 위를 1센티미터 간격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아니, 눈으로 실제 보진 못했지만 눈을 감고서도 등 위에서 어떻게 지나가고 있었는지를 훤하게 읽을 수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이불 속에서 웅크린 자세로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깜짝 놀랄 일은, 그 며칠 뒤에 갱 안의 작업장에서 하마터면 전차에 깔려 죽을 뻔했던 것을 불과 1센티미터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던 나는 20대와 30대의 초반을 비관과 절망 속에서 살아야 했다. 방탕한 생활도 했고 합법적으로 죽을 수 있는 길만을 찾았었다. 그러나 ‘십자가의 꿈’ 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고 나는 탄관에서 수도원으로, 그리고 다시 신학교로 옮겨 신부가 되고야 말았다.


   광부에서 신부가 된 것처럼 그 동안에 바뀌고 변화된 것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십자가 밑에 엎드린 겁난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이 오늘도 나를 슬프게 하고 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http://my.catholic.or.kr/vegabond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떼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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