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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 그리운 이름이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08 조회수731 추천수4 반대(0) 신고

                                          

 

 

 

                      아버지, 그리운 이름이여!



    아버지는 바둑판 위에서도


   언제나 집이 허물어지곤 하셨다.


   고대광실 물리고 막차 타고 떠난 고향


   서울 변두리 어둡고 작은 방에서


   허물고 또 지어 올리는 집


   어깨 넘어 일흔 등 굽으신 채로


   핏발선 남쪽 하늘 몇 번이고 꺾으시고


   그래도 다시 마음 기우는 고향


   산자락 골목길 누비시는 안경 너머에


   노을이 걸쳐졌는지 걸음을 멈출 때마다


   붉은 것을 닦아내시는


   아버지,  아버지


   다만 하나의 빛깔로


     - 「문학사상」 1987년 -


   신달자 님의 ‘아버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잘 그린 것 같아 자주 읽어보는 시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는게 자연스러운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더 뚜렷해지니까요. 아버지가 자식들 곁을 훌쩍 떠나신 지 벌써 스물다섯 해가 지나갔습니다. 얼마 전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갔었습니다. 어릴 적엔 그렇게 넓어보이던 운동장이 이상하게도 아주 좁아보였습니다. 학교 곳곳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어요. 3학년 운동회날 제 손을 잡고 뛰시던 모습이며, 비가 많이 오던 날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서 다른 학부모들 사이에 서 계시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소풍 날, 아파서 아버지 등에 업혀 오던 그 길도 걸어보았습니다. 그날 업혔던 아버지의 넓은 등은 유난히 따뜻하고 편안했었습니다. 마치 과거의 시간들이 날갯짓을 통해 지금 내 주위로 날아오는 것 같았어요. 되돌아 보면 내가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순간은 늘 아버지와 함께였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에게 행복과 평화를 남겨주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나에게 때로는 따뜻하고 정겹게, 때로는 가슴 아픈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 삶 속에 살아계시고 새롭게 다가오십니다. 늘 해맑은 웃음과 큰눈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던 분, 매력이 많으셨던 분, 대나무처럼 꼿꼿함을 지니셨던 분, 늘 마음속에 편안함과 큰 사랑을 지녔던 분입니다. 이웃 사랑과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셨기에 장례식 날에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와서 아버지의 은혜를 입었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나 역시 생명을 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개념에 접근합니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마도 일곱 살 때 어느 여름날이었을 겁니다. 나는 그날 아침 체해서, 오후부터는 열이 오르고 먹은 것을 모두 토했습니다. 하루종일 방바닥에 엎드려 끙끙 앓아서 기운이 빠져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열이 조금 떨어졌는데, 아버지는 나를 업고 시장으로 나가셨습니다. 가게에 들어가셔서 먹고 싶은 것을 모두 집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과자, 과일, 통조림 등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지만 입에도 대지 못하고 다시 잠을 잤습니다.


   한참 후에 깼는데 내 머리맡에서 동생이 그것들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뿌옇게 보였습니다. 사온 것을 먹지는 못했지만 그날 아버지의 등에 업혀 서 느꼈던 따뜻한 체온은 내 인생의 어떤 평화보다도 더 감미롭고 포근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입원하신 청량리 성 바오로 병원에 동생과 같이 들른 것은 길가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큰 손수건 만해졌던 초여름 토요일 오후였죠. 짧은 병문안을 마치고 막 나오려는데, 아버지는 몸을 일으키셨지요. 저와 동생이 다가가서 아버지의 힘없는 손을 잡아드리고 헝클어진 머리도 정성껏 곱게 빗겨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어느새 곤히 잠드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은 채 꿈나라로 가신 것입니다.

 

   이런 기억을 더듬다 보면 제 얼굴엔 어느새 눈물이 흐릅니다.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갔다온 다음 주 수요일 아침이었지요. 신학교 학장신부님께서 저와 동생을 당신의 방으로 호출하셨습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있었는데 신부님은 나지막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셨나?”

   “네,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데요.”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었지요. “자네 들 아버님이 조금 전에 운명하셨다네.” 그 순간 나의 두 다리가 마치 땅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동생을 쳐다보았지요. 아버지가 유난히 사랑하셨던 동생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난 갑자기 닥친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장례식을 마치고 한동안은 아버지와 자주 함께 갔던 장소를 찾곤 했었죠. 대축일이면 동생과 함께 명동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보고 미사를 봉헌했었습니다. 휴일이면 아버지와 극장에 자주 갔었지요. 무슨 영화를 보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척 즐겁고 신이 났었지요.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소설책 「삼국지」를 사주셨던 청계천의 헌 책방, 자주 들렀던 빵집, 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던 충무로 골목 등. 특히 아버지와 함께 자주 놀러갔던 장충단 공원에 많이 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수표교 근처의 그 벤치에 하루종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버지가 묻혀있는 산소보다 추억이 서려 있는 그 장소에 가면 아버지가 더 가까이 계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에 돌 아오던 길에, 성당 입구에 새겨진 성서 말씀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마치 아버지가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어디를 그렇게 헤매고 다니니? 난 늘 네 곁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부터 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늘 내 삶 한가운데 살아계심을 느낍니다. 아버지는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시는 길에 신당동성당을 지날 때면 꼭 나에게 성호를 긋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의 신앙은 빛이 되어 내 삶을 비추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믿음은 나에게 전수되어 온전히 살아있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탤런트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한 시간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무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나도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요. 아버지와 함께 장충단 공원에 가서 벤치에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도란도란 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으로 돌아간다면 꼭 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생전에는 드리지 못한 말씀입니다.


       “아버지,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만난 것이 가장 큰 행운입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 허영엽·마티아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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