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배기완요셉
지리한 장마가 지나고
그토록 그리던 햇볕을
피해
가로수그늘, 전봇대그늘, 이정표그늘,
그늘로 그늘로
길을 걷는데
따까운 햇볕 내리 쬐는
보도 블럭 위로
새까맣게 타 달라붙은
지렁이 한 마리
땅속 깊이 오염된 것들을 들여 마시고
거름진 것들을 내어 놓는 너야 말로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었겠나...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고
십자가위에서 목이 마르다 하고 가신
그리스도의 삶이 아니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