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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9 > 존경하는 신부님께 / 강길웅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10 조회수90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존경하는 신부님께



   새해를 맞으면서 문득 신부님 생각을 합니다.

   뵈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지척의 거리인 것을 게으른 핑계가 많다 보니 그 동안 너무 무례하게 지내왔습니다.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일전에 어느 형제분을 통해서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신부님 스스로 신자들의 모범이 되시어 불철주야 헌신적으로 본당 일에 여념이 없으시다는 말씀을 듣고는 신부님의 그 식을 줄 모르는 열정에 탄복하면서도 혹 건강을 해치지나 않으실까 걱정스러운 말들을 나누기도 했었습니다.


   신부님은 정말 여전 하십니다.

   자신의 것은 모두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 주시는 그 가난함과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시는 겸손함과 그리고 남모르게 성당에 홀로 앉아 오래오래 기도하시는 그 모습은 숱한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어려운 본당에서 고충도 많으셨지만 짜증 한 번 내신 적이 없으셨으며, 언제나 다정한 미소와 따뜻한 말씀으로써 신자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셨고, 목소리는 작으셔도 강론대에만 서시면 하느님의 말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선포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합니다.


   존경하는 신부님!

   주님은 정녕 스스로 낮아지는 사제를 통해서 당신을 더욱 드러내시며, 자신의 것을 모두 비울 수 있는 이에게만 그분의 것을 채워 주십니다. 그러나 한 사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저와 같은 어리석은 사제는 그들에게 보여 줘야 할 당연한 그분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주지 말아야 할 어떤 부담감이라든지 불편함, 또는 안타까운 사건들만 저와 관계 되는 일에서 자꾸 터져 나올 때, 사제로서 제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아득한가를 뼈아프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

   올해는 사제로서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드러나는 신부님의 사제직을 본받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바울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저 자신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매달아 보겠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저의 그 교만함을 단 한 치라도 낮추어 보겠으며, 설혹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있는 것을 찾아서 없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그들을 찾아 나서도록 하겠으며,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분노하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와 용서를 베풀려고 애를 쓰겠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가끔 뭔가를 결심해서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술도 끊으려 하면 내내 없던 술이 자꾸만 생기고, 누굴 좀 사랑하려고 하면 괜한 미움까지 툭 튀어나와 작은 결심을 산산조각을 내고 버릇없이 발로 밟아 버리는 그 무례한 놈은 도대체 누구 일까요?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

   (시편 51,10-11) 


   신부님!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혹 미끄러지거나 넘어져도 일어서는 용기를 가지라고, 일어섰다고 생각할 땐 다시 또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를 가지라고, 아직도 의지가 약하고 굳셈이 부족한 저를 타이르고 가르쳐 주세요.


   그럼 신부님!

   올해는 부디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도 주님 안에서 성취 되도록 기도 하겠습니다.

   존경과 사랑을 드리며,



                                                    1986년 새해 아침에

                                                           강길웅 올림



         - 낭만에 초쳐먹는 소리 중에서 / 강길웅 요한 신부(소록도본당 주임)

 

                           The Four Seasons, Op.8-4 ''Winter'' 2Mvt - Vival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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