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허영에 물들지 않고 청초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하느님의 꽃들 같습니다.
“하느님의 꽃들!/세상 한 복판에 있어도
하늘 임/친히/보살피시기에
하늘 빛/가득 담아
저리도 청초하고/향기로운가보다”
우리 수도자들은 진실과 겸손, 순수의 생화의 삶을 택한 자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삶의 양태와는 정 반대의 삶입니다.
이들의 삶은 참 자기를 잃은, 허영에 노예가 된 자유가 없는 삶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단적으로 이 한마디가 이들의 삶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실속 있는 알찬 삶이 아니라,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된장녀’의 삶입니다.
도저히 겸손의 깊이와 향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과연 어떻게 생화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하느님 현존 안에 살 때 입니다.
하느님 현존 안에 살 때 허영의 안개는 사라지고 진실과 겸손만 남습니다.
겸손과 함께 가는 삶의 깊이에 향기요 자유이고 비로소 생화의 삶입니다.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다.”
세상 그 누구도 스승이나 아버지나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고,
자신 또한 그렇게 불리지 말라 하십니다.
그 누구에 매여 노예가 되어 살지도 말고,
그 누구의 우상이 되어 허영을 살지도 말라 하십니다.
이래야 참 자기가 되어 참 자유인의 생화되어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허영을 부추기는 유혹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시가 의미심장합니다.
우상들이 청소되어 깨끗해진 주님의 성전에
비로소 가득 차는 주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주님의 집이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겸손으로 깨끗해진 우리 마음의 성전 안에
주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는 진리를 상징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 은총이기도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