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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믿음의 여정 ----- 2006.8.27 연중 제21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08-27 조회수51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8.27 연중 제21주일
                                                     

여호24,1-2ㄱ.15-17.18ㄴㄷ 에페5,21-32 요한6,60-69

                                                              

 

 

 

믿음의 여정



좋은 산은 아무리 봐도 좋고, 좋은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좋습니다.
전주에 이어 계속되는 화답송 후렴 역시 늘 들어도 새롭고 좋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 들여라.”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아무쪼록 이 은혜로운 미사시간에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꼭 보고 맛들이시기 바랍니다.


관상가의 행복의 비밀이 어디 있는지 단박 들어납니다.
세상 맛 중에 최고의 맛,

참으로 감미로운 영원한 행복의 맛은 주님 맛뿐입니다.


이 맛을 본 사람,

저절로 세상맛을 잃어버려 무욕의 초탈한 삶을 삽니다.


하느님 좋으심의 체험은 결코 막연하거나 애매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은 것들 가득 널린 세상이 아닙니까?


좋은 사람,

좋은 자연,

좋은 음악,

좋은 음식,

좋은 시간,

좋은 글,

좋은 미사,

좋은 기도 등 두루두루 좋음의 체험들은

곧장 좋으신 하느님의 체험에로 직결 됩니다.

 

벌이 부지런히 꿀을 모으듯 이런 좋음의 체험들이 풍부할 때,

하느님 체험 풍부한 진정 부자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하느님 좋으심의 체험들과 더불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의 열매도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오늘은 믿음의 여정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하느님을 선택하는 결단의 여정입니다.
좋으신 주님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지니신 주님을, 선택하는 결단의 여정입니다.

 

한번 결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매일을 새롭게 주님을 선택하는 결단들입니다.


짧은 인생, 이것저것 좋은 것들 다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 다 택헤 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하느님과 재물 둘 다를,

하느님과 우상 둘 다를 결코 택할 수는 없습니다.

양다리 걸치고 살다보면 평생 제자리걸음에 내적 진보도 없습니다.


정말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양다리 걸치고 살 때의 마음 갈림입니다.

 

몸 약해도, 병 있어도 살지만,

마음 갈려 분산되면 제 아무리 건강한 자도

얼마 못가 정력 소진되어 쓰러집니다.


요즘 경영 전략으로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선택하여

내 삶의 중심으로 삼고

집중적으로 사랑과 믿음, 희망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촉구할 때

그들은 지체 없이 하느님을 선택하는 결정을 하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시몬 베드로 역시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는 주님의 물음에

지체 없이 주님을 선택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여정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삶이 어렵고 고단할 때 마다,

아니 매일매일,

지금까지 믿음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주님의 좋으심을 상기하면서 신앙의 결단을 새로이 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고백의 여정입니다.
하느님 선택의 결단에 곧장 뒤따르는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

여호수아의 결단의 촉구에 주님을 택하며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 역시 주님의 결단의 촉구에 주님을 택하며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평생 우리의 고백으로 삼아야 할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사람에게 고백은 본능적입니다.


고백하지 않고는 살 수도 없거니와 영적 성장도 어렵습니다.
사람에게든 하느님에게든 고백의 중요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백할 때 자기의 정체성도 뚜렷해지고 자유로워집니다.
정말 고백에, 사랑의 표현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이나 부인에게, 자녀들에게, 부모님들에게, 연인에게

진정 마음 담아 사랑한다고, 믿는 다고, 희망한다고 고백하십시오.

또 적절하다 싶으면 안아주고 두드려주고 하며 스킨십도 가지십시오.


성서의 이야기 온통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 희망의 고백들이 아닙니까?
이런 면에서 우리 신자들은 모두 고백의 사람들입니다.


마음과 정성 가득 담아

미사를 통해, 시편 노래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사랑을, 믿음을, 희망을 고백할 때

튼튼해지는 영혼이요 믿음입니다.

 

건성으로가 아닌

진정 고백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드릴 때

별빛처럼 쏟아지는 은총입니다.


즐겁든 괴롭던,

기쁘던 슬프던,

순경이던 역경이던 상관없이

항구하게 주님께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고백할 때,

우리의 믿음의 여정 탄탄대로가 될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은 순종은 여정입니다.
겸손과 믿음은 순종의 열매로 들어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성부께 순종하신 주님이 우리의 모범입니다.


공동체의 일치의 가장 중요한 핵심 덕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순종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바오로의 말씀,

가정 공동체나 수도공동체 모두에 해당되는 진리 말씀입니다.


서로에게 인간적인 순종은 곧 한계에 부닥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순종입니다.

 

모두를 그리스도를 대하듯 대할 때 자연스런 순종입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규칙서에서 순종을 강조합니다.
피동적인 순종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기쁘게 다투어 서로 순종하라 하십니다.


“모든 이들은 순종의 미덕을

  아빠스에게 드러낼 뿐 아니라 형제들끼리도 서로 다투어 순종할 것이며,

  이 순종의 길을 통해서

  하느님께 나아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B71,1).”


하느님께 이르는 지름길, 순종의 길 하나뿐입니다.
순종의 마음 없으면 결코 배우지도 못하고 영적 진보도 없습니다.


내 마음에 들어서 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입니다.
쉬울 때만 순종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순종입니다.


온갖 고난을 통해

하느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신 주님처럼,

일상의 모두를 순종의 학습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미사시간은 물론 매사

오관을 활짝 열고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고, 맛보는 일을 습관화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튼튼해지는 믿음에 풍요로운 영성생활입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죽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주님만을 찾는 ‘주님의 사람’ 이 되어,

주님만을 고백하는 ‘고백의 사람’ 이 되어,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순종의 사람’이 되어

믿음의 여정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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