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로서 투명한 삶을 꿈꾸며
사제로서 가장 편안한 만남은 동료 사제들과의 만남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제들과의 만남이 가장 편안한 만남일 수밖에 없도록 안팎의 여건이 강요하는지도 모릅니다.
왜 사제로서 사제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편할까요? 단지 같은 길을 걷기 때문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이런 이유만은 아닙니다.
사제들의 삶, 겉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많은 부분 감추어져 있습니다. 비단 사제들의 삶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지요.
사제는 말이나 생각, 그리고 행동에서 많은 부분을 감추도록 강요당합니다. 사제는 자의든 타의든 많은 부분을 감추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면 믿는 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 드러내면 자칫 의도하지 않았던 분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교회의 누가 될 수 있습니다.
신자분들을 만나면 참 조심스러워집니다. '혹시나 나 때문에...' 하는 마음이 들곤합니다. 이런 저런 응어리들을 내 자신 안에 꼭꼭 감춥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동료 사제들에게 풀어놓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고, 욕도 해대고, 자신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들 부끄럼없이 벌려놓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어찌보면 위선자입니다. 적어도 제 자신은 위선자입니다. 일상 생활 안에서 만나는 많은 믿는 이들이 바라보는 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감추어진, 그래서 동료 사제들에게만 살짝 풀어놓는 추한 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감추는 것이 믿는 이들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싶기도 합니다. 사제를 향한 믿는 이들의 꿈과 사랑을 깨뜨릴 수는 없으니까요. 사제로서 감수해야 할 고통을 그대로 믿는 이들에게 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감추려는 인간적인 추함이 자신을 감추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밖에 없겠지만은...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대더라도 겉과 속이 다르니 위선자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안타깝게도.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참으로 수치스러운 이름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저의 이름입니다. 주님 보시기에, 믿는 이들이 보시기에, 동료 사제들이 보시기에 한 점 부끄럼없이 겉과 속이 똑같은 삶을 살고 싶은데... 언제나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노력할 따름입니다. 한 사람의 사제로서 투명한 삶과 '다름'을 기쁘게 받아 안는 넉넉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상지종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