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기쁨으로 (마르 9,30~32)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당에 왜 다니십니까?" 하고 물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가 그것입니다.
세상사에 허덕이다 상처 입은 마음을
추스리기 위하여 성당에 다닌다는 것이지요,
이 말대로라면 성당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을 법한데
전례 때마다 들려 오는 노랫소리는 온통 찬미와 찬양,
그리고 기쁜 소리뿐이니, 슬픔이 기쁨으로 다독여지는 곳이
또한 성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 이야기를 두 번째로 들려주십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어린아이를 고치시며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신,
한마다로 '잘 나가시던' 예수님이 또 한 번 엉뚱한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 말씀의 참뜻을 깨닫지 못했고
또 묻기조차 두려워합니다.
'잘 나기시던' 예수님 덕분에 기쁨 가운데 있던 제자들에게
슬픔을 예고하는 이 말씀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기보다
곧 '안'알아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과 끝까지 기쁨만을 나누고 싶어하면서....
세상일에는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 수 있지요.
슬픔 없이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예수님 역시 슬픔 뒤의 기쁨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쁨이 있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만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크게 자라는데 말입니다.
기쁨은 다가올 슬픔을 준비시키고 슬픔은 기쁨을 예고합니다.
그래서 슬픔과 기쁨은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고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입니다.
그는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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