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속
우리 집 3남 1녀 중 큰누나와 나는 24살 차이 띠동갑이다. 그런 누나가 몇년 전부터 희귀병을 앓고 있다. 100만명 당 한명 꼴로 걸린다는 다발성 근육경화증으로 근육이 서서히 굳어져 가는 병이다. 그런데 바로 전에 있던 선남본당에서 누나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자매님이 세례를 받게 됐다. 그분은 소뇌위축증으로 누나와는 다른 병이다. 그러나 외적으로 보이는 증상은 비슷했다.
그런 까닭에 그분을 뵐 때마다 누나 모습도 함께 보였다. 그때마다 산삼을 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막연한 동경이 생겼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7월 중순 어느 월요일, 주일학교 교장 선생님과 산에 올랐다. '산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모험심만 갖고서 말이다. 산삼이 가끔 나온다는 산에서 땅을 살피며 묵주기도와 화살기도를 바쳤다.
"저에게 산삼을 보여주시면 우리 교우분과 누나에게 드리겠습니다."
'제일 먼저 발견하는 것은 우리 교우분에게 드리고, 그 다음 것은 우리 누나에게 드리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몇 시간을 헤맸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산삼 2구 짜리가 보이는 것이다. 성호경을 긋고 주모경을 바치고 허겁지겁 산삼을 캤는데 어깨에 짊어지자마자 갈등이 생겼다.
'아! 어머니…. 교우 자매님과 누나 중 누구를 드릴까요?'
캐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갈등을 하다가 교우 자매님에게 드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에 보이는 것은 누나에게 줘야지'라고 마음을 먹고 또 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같이 오셨던 교장선생님이 소리를 치셨다.
"신부님, 신부님! 어디 계십니꺼? 이제 가입시더."
그 말을 듣고 내려오는데 느낌이 이상해 주변을 살펴봤다.
'사…사…사안삼'이었다.
당황했다. 감당하기 너무 벅찬 4구짜리 산삼이 길 옆에 있었던 것이다. 그 밑에 2구짜리가 두개, 1구짜리가 하나 흔히 말하는 가족삼이었다. 다시 성호경을 긋고 주모경을 바치고 감사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캔 산삼을 마음으로 약속했던 사람들에게 전해드렸다. 사실 누나는 산삼이 얼마짜리인지 모르고 드셨다. 나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본당에 모여서 구경했던 신자들의 휘둥그레진 눈으로만 짐작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을 해봤다. 만일 선한 의도와 그 순서가 어긋났다면 흔히 말하는 용꿈 같은 현실이 주어졌을까? 산삼이 아니라 도라지도 못 캤을 것이다.
- 김호균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 차장)
With solitary my wild go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