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삶이 보이는 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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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현철 | 작성일2006-09-29 | 조회수33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삶이 보이는 창 (대림 제 2주간 토요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오늘 복음(마태 17, 10- 13)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고로, 대학원 때에 중도에 실명하였지만 마음과 신앙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또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보이는 창문이 되어주시는 김 안드레아님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라는 글을 소개해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난 자주 집 가까이에 있는 뒷산에 오른다. 오늘도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산에 올랐다. 한동안 바쁜 일로 와 보지 못해서 그런지 어느덧 산은 완전히 숲으로 뒤덮인 여름 산으로 바뀌어 버렸다. 코끝에 느껴지는 푸른 내음과 새소리가 너무도 좋다. 초여름의 산야에 울리는 뻐꾸기, 꾀꼬리, 산꿩 장끼의 울음소리가 아름답기만 하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졸졸 흐르던 계곡이 제법 큰 물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어디선가 초록의 내음과 함께 연한 풀꽃 향기가 느껴진다. 아내는 내 손을 오솔길 가에 피어 있는 꽃에 대어 준다. 꽃이 조금 크고 동그라며 예쁘다. 코를 대 보니 은은한 향기가 있다. 엉겅퀴란다. 꽃에서 손을 내려 잎을 만지니 무척 따갑다. 잎 끝에 가시가 달려 있다. 잎은 가시로 되어 있는데 꽃은 아주 우아하고 예쁘다. 조금 더 오르다가 진한 향이 있는 곳에 자생 인동초가 있다. 넝쿨이 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며 하얀 꽃을 달고 있다. 아담한 꽃에 아주 진한 향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하얀 작은 종이 달린 모양의 은방울꽃, 상추 같은 잎에 자그마한 자주 꽃을 달고 있는 앵초, 난초 같은 잎에 보라색 꽃을 피운 붓꽃 등 많은 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꽃을 좋아했다. 아마도 중학교 시절까지 넓은 마당이 있는 고향집에 살며 많은 꽃을 가까이해서 그런가 보다. 소박한 정원에 작은 채송화, 분꽃, 봉숭아, 창포, 꽈리, 매화, 장미, 해당화 등 많은 꽃들이 가득했다. 키 작은 채송화에 벌들이 가득 붙어 있는 고향 정원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짙은 노랑과 갈색이 섞여 있는 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꽃을 생각하면 항상 어렸을 적 고향 마당의 평화로운 정원을 떠올리게 된다.
대학원 4학기 시절 연구소 연구와 학위 논문에 정신없던 그때에도 나의 책상 위에는 여러 색깔로 앙증맞게 붙어 있는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었다. 책상에 놓인 예쁜 화분을 들여다보며 좋아했었다. 그런 내가 학위 논문을 쓰던 중 갑작스런 눈 질환으로 인해 투병할 때였다. 낮에는 혼자 걸을 수 있는 시력으로 투병하던 어느 날, 난 병원에 다녀오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종로 5가를 지나고 있었다. 길가에는 꽃집들이 즐비하였다. 꽃집 앞에는 많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난 자신도 모르게 한 화분 가까이 갔다. 분홍빛의 큰 꽃잎이 흐린 시야에 들어왔다. 영산홍 꽃이었다. 난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꽃잎 가까이 들이대었다. 마치 꽃잎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 들여다보며 난 그 아름다운 분홍빛 꽃에 빠져 있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얼마 후면 이 아름다운 꽃잎과 색깔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은 너무도 절실하고 처절하였다.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아저씨,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예요?” 하는 소리에 난 뭐라도 들킨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며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완전 실명 후에 난 많은 어려움과 충격을 받았는데 꽃에 관한 것도 예외가 아니었다.
실명 후 첫해 봄에 봉사자와 함께 능동 어린이 대공원을 갔을 때였다. 대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꽃향기가 가득하였다. 입구에 있는 진달래 꽃 앞으로 나를 봉사자가 안내해 주었다. 그녀는 내 손을 꽃잎에 대주었다. 난 꽃잎을 만지는 순간 그만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보랏빛의 예쁜 진달래꽃이 아닌 차가운 물체가 만져졌다. 다시 한 번 만져 보았다. 역시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차가운 무언가가 전해졌다. 눈으로 보았고 그렇게 상상했던 꽃은 그저 차가움의 물체였던 것이다. 난 크나큰 실망과 충격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였다. 눈으로 보았던 아름다움과 손끝에 느껴지는 현실은 전혀 달랐다.
요즈음 우리 집 정원엔 온갖 꽃들이 피어 있다. 이 계절에는 특히 창포 꽃이 만발하여 보랏빛이 가득하다. 초록의 잎에 쭉 올라온 보라 꽃대가 수없이 피어 있어 장관을 이룬다. 난 곱게 피어 있는 창포 꽃을 만지며 부드러운 꽃잎과 그 자태를 느껴 본다. 그리고 그 풋풋한 향을 깊이 마셔 보곤 한다. 이렇게 하면 그 아름다움을 거의 그대로 즐길 수 있다. 꽃잎도 하나하나 만져 보고 모양도 느끼며 꽃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역시 아름다움은 바라보는 것만이 아닌 조금 다른 방법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과 봉사자들 앞에서 강의할 적마다 난 이렇게 묻곤 한다. “시각 장애인과 함께 가다 꽃을 보면 어떻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름다움은 꼭 보아서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 이 글은 2004년 12월에 올렸던 글입니다. 교회의 문과 창도 열려야겠지만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안, 영안도 열려야겠지요.^^* 그리고 김광석(안드레아)님은 얼마 전까지 가톨릭아마추어무선사회(마르코니회) 회장으로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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