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13 > 괴짜수녀일기 / 하느님 고맙십니데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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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09-29 | 조회수849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
하느님 고맙십니데이 “넌 수녀가 되면 좋겠다.” “싫어.” “왜?” “나는 검은 색을 싫어하니까.” “…….” “고모가 누굴 제일 좋아하는지 난 알아.” “누군데?” “듣지도 못하고 말 못하는 아이들이지 뭐, 애화학교 학생들 말이야.” “…….” 내 조카가 어렸을 때 같이 나누었던 대화이다. 어린 마음에 고모가 자기보다 애화학교 아이들을 더 사랑하지 않나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집에 갈 때 마다 조카들이 쓰던 장난감이나 소꿉을 애화학교 아이들에게 주면 어떻겠냐면서 야금야금 가져오곤 했기 때문이다. 결국 빼앗은(?) 격이니 내심으론 얼마나 야속 했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니 어쩌랴. 지금도 나는 영성체를 할 때마다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나이도 제일 많았던 경오가 떠오르곤 한다. 경오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주일이면 학교 인근 성당의 어린이미사에 참례했는데 그곳 주일학교 아이들 수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고맙게도 우리 애화학교 학생들의 자리가 한쪽에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 쾌도도 별도로 준비해서 학교 선생수녀 중에 한 명이 수화로 미사해설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날따라 경오는 그 큰 덩치로 떡하니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줄곧 경오를 바라보며 졸업 후에 경오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골똘히 생각하며 분심에 빠져 있었다. 한참 동안 정신을 빼놓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아이고, 이걸 어쩌나! 영성체는 이미 끝나고 신부님은 제대 위에서 바지런히 설거지를 하고 게시지 않는가!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애화학교 학생 때문에 넋을 놓고 있다니…. 사랑의 속성은 관심이라 했던가. 그러기에 그 사랑은 바로 나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경오가 졸업을 하고 떠난 뒤 한참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냈는데 몇 달 전에 결혼을 했다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간호할 사람이 필요했던 경오는 건강하고 예쁜 정상인 처녀와 결혼을 했단다. 중매를 해서 만났는데 처음에는 처녀 쪽에서 경오를 보고 딱지를 놓았단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을 했는지, 처녀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여겨 결국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란다. 얼마나 다행인가. 현재 경오는 아버지와 시골에서 정미소 일을 하며 그 갸륵한 여인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만하면 경오는 앞길이 트인 셈이다. “하느님, 고맙십니데이. 그날 당신의 몸은 비록 못 모셨지만 제 억센 고민을 이렇게 헤아려 주셨으니 말입니더.”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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