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9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갈라1,6-12 루카10,25-37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 복음의 어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누가 진정 크리스천인가 거울처럼 비춰주는 예화입니다.
예화를 읽을 때 마다
사제와 레위인을 통해 사제인 제 자신을 보는듯하여 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대체적으로 교사들의 특징은 실천보다 말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삶이 그의 지식이나 말을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지식인의 초라한 자화상 일 런지도 모릅니다.
오늘 율법 교사도 예외는 아닌 듯싶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많이 알아도
영원한 생명을 체험하지 못한, 행함이 부족한 지식인의 삶은
늘 목마를 뿐입니다.
그러나 율법교사 ‘제가 무엇을 해야’라며 정확히 문제의 핵심을 집어냈고,
이어 율법교사의 답변을 통해
스승인 주님은 자연스럽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다 아는 사랑의 이중 계명의 실천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라는 율법교사의 대답에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다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어 어떤 사마리아인의 예화를 통해 계속될 논쟁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사랑 실천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화 중 사랑에 대한 이론이나 지식에 있어서는
누구에도 뒤지지 않을 전업적 종교인이라 할 수 있는 사제와 레위인은
강도들에게 초죽음이 된 어떤 사람을 보자 슬며시 피해 갔습니다만,
한 여행 중인 사마리아인만은
가엾은 마음에 자기의 돈과 시간과 정력을 다 들여
온 마음으로 정성껏 치유하여 초죽음이 된 그 사람을 살려냈다 합니다.
이 예화를 끝내면서 주님은 율법교사에게 명령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내 중심으로 ‘누가 내 이웃인가?’ 묻지 말고,
어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네 자신이 곤경 중에 있는 이들에게 이웃이 되어주라는 말씀입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 받았다는 복음도
결국은 사랑의 이중계명의 실천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오시는 주님은
율법교사에게처럼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실천을 명령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