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To : 이현철 신부님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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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06-10-14 | 조회수513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
멋진 그림과 음악이 어울어지고, 좋아 하시는 정호승님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Meditation at Noon/2000/65.1 x 100/Acrylic on Canvas 박항률 그림 정호승 박항률님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갑자기 "쿵" ! 하고 바위 하나가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굴러 떨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곧이어 그 바위가 꽃잎이 되어 내 가슴의 또 다른 한 곳에 사뿐히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그의 그림에서 우러 나오는 고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찍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정적, 그 고요함의 깊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박항률님의 그림 앞에 서면 늘 침묵과 고요함을 느낀다. 그것은 이 소란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어느 한순간, 담벼락 모퉁이에 홀로 피어 있는 백일홍을 보고 갑자기 걸음을 딱 멈추었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과 같다. 은행나무나 모과나무 가지에 달려 있던 열매들이 바람 부는 어느날 땅에 떨어져 말없이 침묵 가운데 이루는 고요함과도 같다.
untitled/1992/130 x 130/Acrylic on Canvas 나는 그의 고요함 앞에 언제나 옷깃을 여민다. 그의 고요함은 고맙게도 내 현재적 삶을 정지시킨다. 더 이상 과거의 고통이나 미래의 불안 속으로 처벅처벅 걸어들어가지 않게 만든다. 내가 가장 기뻐했던 삶의 어느 한 순간에 영원히 나를 머무르게 한다. 나뭇가지 끝에 고요히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면 마치 오랫동안 나 자신이 그렇게 나뭇가지 끝에 고요히 앉아 있는 것 같고.
The Dawn/2000/72.7 x 60.6/Acrylic on Canvas 노랑 저고리를 입은 소녀의 머리위에 앉아 있는 새를 보면 나 자신이 그렇게 한 소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듯 문득 영원과 연결 된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그 고요함과 영원함 앞에 늘 무릎을 꿇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묵상하는 자의 겸손함과 경건함이 있다. 침묵이 부족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자의 고뇌가 있다. 천년 세월 동안 가슴위로 두 손을 모우고 선 채로 살아온 운주사 돌부처들의 침묵이 있고 , 성당의 장궤대에 무릎을 꿇고 고요히 기도하는 소녀의 순결한 묵상이 있다.
비어(The Secret Story)/2000/80 x 80/Acrylic on Canvas 박항률님의 그림 속에서는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의 동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소년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물고기 비어(飛漁), 인간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人面鳥), 해 속에 사는 세 발 가진 까마귀 삼족오(三足烏), 등에 소년을 태우고 달리는 천마(天馬) 등은 상상력이 고갈된 우리의 현재적 삶에 신화적 상상력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나는 그가 열어놓은 상상력의 문에 기대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 싶어하는 세계가 어쩌면 동화나 신화의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A Boy/2000/39 x 29/Acrylic on Paper 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고요히 지구로부터 멀어져가는 초승달의 발소리가 들린다. 잠든 우리의 창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새벽별들의 발소리도 들리고, 비어가 날아다니는 푸른 하늘의 바람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의 그림을 통해 인간이 자연을 통해서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그림 속에는 자연을 만나러 갈 수 있는 인간의 길이 있다. 그 길을 걸어가면 자연과 합일된 아름다운 인간들의 얼굴이 있다. 말이 된 소년, 새가 된 소녀, 머리에 나뭇배를 이고 나뭇배가 된 인간의 본질적 모습이 있다. 그런 모습들이 이루는 고요함 앞에, 자연과 인간이 만나 이루는 고요함의 어느 어느 한 순간 앞에 서면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 만일 내가 새가 된다면 그가 그린 인면조가 될 것만같다.
시도 그렇지만 그림도 가난한 인간의 마음을 위안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의 그림은 마치 가난한 동생을 염려하는, 정신없이 물질의 세계를 향해 바쁘게 살아가는 동생의 소매 끝을 살며시 끌어당기는, 누님의 손길 같다. 나는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이 무슨 생각에 그리 깊이 빠져 있는지, 어떠한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분명 인간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고독과 사랑의 고통에 대하여 꿈을 꾸고 있는듯하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고통을 뛰어넘은 자의 한 순간이 엿보이는 듯해서 아늑하다. 눈물 끝에 열리는 미소가 엿보여서 평화롭다. 특히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는 소년의 맑고 투명한 눈빛은 잊기 힘들다. 그 소년의 눈빛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존재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소녀(A Young Girl)/1997/40.9 x 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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