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0.17 화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갈라5,1-6 루카11,37-41
사랑의 샘
중요한 것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본질적인 것을 살 때 삶은 단순해지고 진실해 집니다.
본질적인 것을 살지 못하는 한 복잡한 삶에 자유는 요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을 식사에 초대하는 바리사이,
부수적인 것에 사로잡혀있는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전형입니다.
규칙준수에 충실한 많은 수행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놀랐다 합니다.
얼마나 철저한 율법 준수의 바리사이인지 알게 됩니다. 사태의 진상을 파악한 주님의 본질을 잡아내는 말씀입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을 만들지 않으셨느냐?”
과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은 몇이나 될 런지요?
정작 중요한 본질적인 것은 겉이 아니라 속입니다.
잔과 접시의 겉뿐만 아니라 속의 내용도 깨끗해야 하듯이
밖의 외모뿐만 아니라 속의 마음도 깨끗해야 합니다.
요즘 수도원에 선물로 들어온 것들의 포장을 보면
낭비와 사치의 극치에 저절로 탄식하게 됩니다.
속의 내용보다 겉의 포장으로 인한 낭비가 너무 큰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모습 때문입니다.
예전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겉옷보다는 속옷이 깨끗해야 하고,
속옷보다는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이들을
그리스도와 인연이 끊긴 자들이요 은총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이라
크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좌우간 무엇엔가 매여 외적으로 치우치다보면 자유롭기는 참 힘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하여 율법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믿음으로 의로워지기를 간절히 희망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통한 믿음의 삶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무엇을 지키고 안 지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사랑을 끊임없이 나누는 삶이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마치 샘물을 계속 퍼낼 때 늘 신선한 샘물이 되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끊임없이 사랑을 나눔으로 이루어지는 깨끗한 마음,
바로 끊임없이 샘솟는 ‘사랑의 샘’과도 같습니다.
좋으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마음속을 깨끗이 하시고
‘사랑의 샘’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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