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The Lord Jesus appointed seventy-two disciples whom he sent ahead of him in pairs to every town and place he intended to visit
(Lk 10.1)
제1독서 디모테오 2서 4,10-17ㄴ
복음 루카 10,1-9
요즘 저는 식사 때마다 약간의 곤란함을 겪고 있습니다. 즉, ‘오늘은 어떻게 해 먹지?’라는 걱정을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지요. 이것이 뭐가 걱정거리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오늘은 뭘 먹지?’가 아니라, ‘오늘은 어떻게 해 먹지?’라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식복사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가 좀 안됐다 싶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며칠전에 오셨던 순례객들이 제게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신부님, 저희가 준비한 점심이 조금 남았는데 신부님 드리고 가도 될까요? 신부님께서 식사 하시려면 이런 밑반찬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저야 너무나도 감사하지요. 밑반찬 만드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니까요. 저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시는 그 분들이 너무나 고마웠고 저는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주신 음식의 양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한 달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의 반찬을 주셨네요. 그러다보니 그 많은 반찬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음식을 해 먹고 있고, 며칠이 지난 지금은 지겹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그분들은 저를 위해서 그 많은 반찬들을 주셨지요. 따라서 저는 당연히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혼자 살고 있는 저로써는 그 많은 반찬이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그분들의 마음을 보는 것보다는 ‘이것들을 언제 다 해치우나’라는 마음을 가지면서 투덜거리고 있네요.
생각해보니 사랑을 나의 기준에 맞춰서 나쁜 것으로 깎아내렸던 적이 얼마나 많았나 싶습니다.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나의 불편함을 생각하다보니,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파견할 때에 아주 이상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즉,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서 보냈다는 것이지요.
사실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불편하고 힘든 인원은 2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고 할지라도 둘이 여행을 하면 꼭 싸우게 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세 명이 여행하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두 명이 싸우게 될 때, 한 명이 중재를 서게 되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 지워 보내십니다. 왜 그럴까요? 열심히 치고 박고 싸우라고 그러셨던 것일까요?
비록 사랑하기 힘든 상황에 놓일지라도 어떻게든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가요? 나의 기준에서만 사랑을 생각했고, 그리고 그 기준에 맞추다보니 상대방의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판단하고 단죄했나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리고 그 짝을 우리 주변에 마련해두셨습니다. 이제는 그 짝과 함께 어떻게든 사랑하면서 세상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니까요.
음식투정을 하지 맙시다.
무한대 거래 법칙(윤태익, '큰날개 레터' 중에서)
1. 믿는만큼 보이고 간절한 만큼 이뤄진다
2. 미친만큼 미치고 궁한만큼 통한다
3. 주는만큼 받고 뿌린만큼 거둔다
4. 움직인만큼 건강하고 감사하는만큼 행복해진다
5. 기뻐하는만큼 즐겁고 웃는만큼 복이 들어온다
6. 꿈꾸는만큼 현실이 되고 사랑하는만큼 하나된다
7. 상상하는만큼 성공하고 하는만큼 얻는다
The harvest is abundant but the laborers are few; so ask the master of the harvest to send out laborers for his harvest. (Lk 10.2)
너의 가슴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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