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오 28,16-20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리라 언약을 맺었던 산,
참 행복의 계명을 들었던 산으로 찾아왔다.
그들을 불러주셨고 새 생명의 환희로 채워주셨던
그 첫 사랑의 장소, 갈릴래아.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전과는 같지 않았다.
열 둘이 아닌 열하나.
그나마 어느 한 명도 온전치 않다.
한 솥밥을 먹여 길러주고 한 형제로 맺어주신 스승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가슴 깊이 새겨진 것이다.
그 깊은 상처로 인해 스스로 조각나고 파손된 채로
스승을 뵙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런데 엎드려 절하는 이 행위는
그분을 스승으로서 맞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알아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분을 주님으로 경배하는 이 모습은
그들의 본질인 땅에(창세 2,7) 먼저 공손히 엎드린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렇다.
그동안의 무수한 방황과 배반은
바로 인간의 본질적 한계인 흙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땅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겸손하게 자신의 질료와 화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시시때때로 방황하고,
작은 계명 하나를 지켰나 싶으면 어느 틈에 공명심에 사로잡히고,
사소한 일에도 다시 일그러져 버리는 서글픈 좌절과,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아무 것도 의탁하지 못하고 있는 불신을 발견할 때마다,
차라리 그분을 떠나 그분을 만났던 일마저 후회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다.
그 모든 것이 인간의 본질적 무능과 한계에서 오는 것임을 아는 것.
그래서 흙에서 온 피조물, 인간임을 겸손되이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을 경배하는 일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지금의 엎드림은 지쳐 쓰러짐이 아니요.
나의 재질이 그러하니 별 수 없다고 포기함도 아니다.
땅으로 땅으로 내려감을
하늘로 오르려는 시도 못지않게
기쁘게 받아들이며,
땅에서만 들을 수 있는 땅의 소리를
겸허히 들으려는 엎드림이다.
두 손만이 아닌 더 낮은 엎드림, 땅과의 빈틈없는 밀착이
실은 하늘에 대한 가장 겸허한 자세, 최고의 흠숭의 자세임을 깨닫고 있기에
기쁘고 조심스럽게 온 몸과 마음을 투신하는 오체투지인 것이다.
그러나 깨닫는다는 것이 늘 그에 걸맞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니라는 듯,
땅에서 허리를 떼자마자 벌써 몸이 반란을 꿰하고 있다.
마치 열한 제자중 몇은 벌써 의심을 품고 있듯이 말이다.
이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분은 늘 먼저 다가 오신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다."
땅으로 내려오셔서 땅의 허약함을 체험하시고
죽음까지 받아들이셨던 극도의 무능함 때문에 ,
하늘의 권능은 물론 땅에 속한 모든 권한까지 부여받으셨다는 것이다.
극도의 무능 때문에 전능을 얻은 분.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무능과 한계 안에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제 그분의 전능하신 도우심으로
제자들은 상처를 치유받고, 조각난 공동체는 소생되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새로운 사람들을 모으고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제자들에게까지 부여된 것이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한치도 땅과 떨어질 수 없는,
땅을 밟고 사는, 땅의 소산물이다.
그러기에 그분은 세상 종말까지 항상 제자들 곁에서
끊임없이 사랑과 힘을 불어넣어주며 함께 하겠다신다.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늘과 땅의 온전한 결합은 세상 끝날에 그분에 의해 완성될 것이다.
땅의 온전한 하늘 됨은 세상 끝날에서야 이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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