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오늘 복음묵상]준비와 기다림 / 박상대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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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10-24 | 조회수957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06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기념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성인은 1807년 스페인의 살렌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835년 사제가 된 그는 여러 지방을 다니며 사목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인은 1849년 클라렛 선교회를 설립하고, 같은 해에 쿠바의 산티아고 대주교로 선임되었습니다.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대주교는 과학 연구소를 설립하여 자연 과학 박물관, 음악과 언어 교육원 역할을 하도록 하고, 바르셀로나에 수도자 도서관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868년 이사벨라 여왕과 함께 유배되어 스페인에서 추방되었습니다. 1870년 프랑스에서 선종한 그를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이 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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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루카 12,35-38)
Blessed are those servants
예수님께서는 항상 깨어 있기를 당부하시며,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이하는 종의 행복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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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작전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군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악마의 유혹이 파고들 수 없습니다. 게으름과 방심 속에 사탄은 우리 마음속으로 헤집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은 제쳐 두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련해 주신 평화를 흩어 버립니다. 모든 것을 얻느냐 잃느냐는 깨어 있음에 달려 있습니다.
준비와 기다림
준비와 기다림. 이 둘은 형제지간 쯤 된다. 준비는 미리 마련하여 갖추는 것이고, 기다림은 오거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을 미리 마련하여 잘 갖추고 있으면서 무엇이 오거나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안성맞춤이다. 다가오는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면 수험생들은 사전에 그만한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고, 내일 단풍놀이를 가기로 했다면 계획에 따른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해야 할 것이다. 준비를 소홀히 하거나 게을리 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내일이 세상의 종말이라 치자. 그렇다면 종말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종말을 잘 맞이할 것인가? 오늘 복음이 마침 준비와 기다림에 관한 내용을 들려준다. 복음은 우선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35절)는 예수님의 명령을 보도하고, 이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들려준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발견된다.(마태 24,43-51; 마르 13,34-36) 여기서 준비와 기다림이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것이 분명하다.
복음서가 집필되기 전에 모든 복음공동체에 확실하게 퍼져있었던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심판자와 하느님 나라의 왕으로 오실 것과, 다른 하나는 그 오심의 시각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급하게 닥쳐와야 할 재림사건이 자꾸 지체하자 초기 교회공동체 안에 초조함과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적절한 입장표명이 4복음서 저자 모두의 숙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직접적인 발설과 원전(原典)을 토대로 제각기 예수님의 공생활 마지막 시기에 맞추어 세상의 종말과 재림사건을 보도하고 있다.(마태 24,1-44; 마르 13,1-37; 루가 21,5-36; 요한 14,1-3; 16,16) 루가가 집필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승천을 앞둔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1,6)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1,7) 하고 대답하신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왕국창건과 세상심판을 위해 다시 오실 것인데, 그 날과 그 시각은 한밤중이 될지 새벽녘이 될지(38절)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재림의 날과 시각이 아니라, 분명히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믿는 이의 태도는 준비와 기다림뿐이다. 교회는 그 동안 2,000년의 긴 세월을 준비하고 기다려 왔고, 최종적인 그 날과 그 시각을 향하여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지난 세월동안 사라져간 사람들 안에서 그 날과 그 시각을 보았다. 이 말은 한 인간의 죽음이 바로 그 날과 그 시각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를 뿐,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다 안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죽음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살아가는 것이다. 허리에 띠를 띠고 산다는 비유의 뜻은 항상 근면하게 일하고 남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말한다. 등불을 켜 놓고 산다는 비유는 자신 안에 죄악의 어두움을 몰아내고 밝게 살아가는 마음자세를 뜻한다.
이러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가 생(生)을 마감할 때, 즉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주님께서 그를 기쁨과 평화의 식탁에 초대하여 도리어 그에게 봉사해 주실 것이다.(37절) -박상대신부-
[생활성가] 삶의 작은 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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