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을 나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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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인옥 | 작성일2006-10-24 | 조회수77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가을 나무
무성했던 잎사귀들이 하나씩 둘씩 떨어진다 노란 색, 빨간 색의 장렬한 주검들이 길 위로 숲 속으로 떨어져내린다
매서운 추위를 이기고 보람의 새싹을 피워내던 봄 하늘을 찌를듯 솟아오르던 푸른 기상의 여름 튼실한 열매를 훈장처럼 매달았던 초가을이 지나고 긴 긴 숙면의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
우리가 보고 있는 나무의 모습 중 어떤 것이 나무의 참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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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매와 통화를 했다 재능있고 머리좋고 명랑하고 마음씨착하고 무엇보다 신앙심 좋은 자매이다.
그녀가 신이나서 일하던 봉사직을 그만두게 된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였다.
생계을 위해 자그마한 사업체를 남편과 함께 운영했는데 돈도 꽤 많이 벌었고 사업 능력도 그런대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어떤 어떤 일이 생기고 그러는 동안 벌어놓았던 것도 많이 없어지고 이젠 먹고 사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였다.
(먹고 사는 정도? 이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리라..)
아무튼 지금은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무관심했던 몸둥이가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살살 건강이나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와서의 생각은 그동안 돈을 벌만큼 벌었다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도로 다 없어져 버렸는데... 그동안 사업 수단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하는데...
그러면서 내가 벌써 졸업하게 되었다는 것을 축하한다며 자신도 차라리 옛날처럼 봉사나 신나게 하던지 나처럼 하고 싶은 공부나 죽사리나게(?) 하던지 할 걸 그랬다고 한다.
나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벌은 돈이 다 없어져버렸다고 생각하면 허무하다 하겠지만 그 돈으로 아이들이 자랐다는 걸 어찌 잊어버릴 수 있겠나
두 아이가 다 기대이상으로(남보다가 아니라) 잘 자라주었는데 그것이면 충분한거다. (자매의 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약간 지능에 장애를 보였지만, 그 아이의 예능을 키워 주어 거뜬히 대학에 들여보낸 일은 거의 입지전적인 일이었다.)
나는 자매가 그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또 자매가 사회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보았다는 것. 그렇게 사회적 능력이 있으면서도 교회에서 봉사했다는 것이 더욱 값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도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자매는 밝은 목소리로 웃었다. 큰 병은 아니지만, 몸이 불편하다보니 만사가 시들하고, 살아온 세월에서 잘한 것보다는 모두가 잘못한 것만 있는 것 같았다고.
오래간만에 연락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위로를 받았다면서 옛날처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자매의 웃음을 듣고 내 마음도 환하게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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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도, 재작년 가을도 똑같이 앙상하고 볼품없는 모습이 될 때까지 마지막 잎새 한 톨까지 떨어내는 그 허무한 일을 해마다 해마다 반복하는 가을 나무.
그러는 동안 줄기는 저절로 두꺼워지고 뿌리는 저절로 깊어지는 것이다
어찌 잎사귀만 보고, 열매만 보고 나무의 참 모습을 이야기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곳의 나이테는 그렇게 삶의 경륜을 새겨나가고 있는 것이다.
숲을 숲이게 하는 고목!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거목!
그들의 끊임없는 자기 비움은 어쩌면 자기 충만으로 가는 고행의 여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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