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9 > 두 원장의 차이 < 하 >ㅣ강길웅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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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06-11-01 | 조회수1,127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
두 원장의 차이 < 하 > 4대 원장에 부임한 수호(周防正季:1933 ~ 1942)는 의사이면서 건축에 있어서도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단히 야심적이고 명예욕이 강했기 때문에 소록도 자혜의원장으로 오면서 소록도에 세계적인 나 요양소를 건립하기로 작정하고 나환우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야망을 펼쳐 나갔다. 먼저 환자대표를 10여 명 선발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고 그들에게 지상낙원의 건립을 역설하여 감동을 시킨 뒤에 환자들의 자발적인 노동력 제공을 얻어냈다. 그리고 벽돌 제조 공장을 만들어 병사와 사무본관, 그리고 치료본관 등을 준공하였는데 이때 환우들이 치러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차 확장공사를 성공리에 마친 수호는 다시 2차 확장공사에 착수했는데 이때부터는 환자들이 좀처럼 열의를 보이지 않게 되자 수호는 자신의 심복인 사또(佐藤三代治)라는 간호주임을 이용하여 강제 노역을 시켰는데 환우들을 얼마나 혹사를 시켰는지 도주하는 자들이 늘어났으며 부상자들도 속출하였다. 이에 병원 당국은 도주하는 자를 감시하기 위하여 엄동설한에 바위투성이의 깍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순찰도로를 개설했는데 이는 실로 뼈를 깎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이때 동상에 걸려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자들이 수없이 많이 생겼으며 강제노역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도 거세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또는 배급하는 양곡에서 일정량을 떼어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국방헌금을 내도록 강요하니, 먹는 것의 부족과 약품공급의 부족으로 환자들의 병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런데도 사또는 더욱 포악한 방법으로 작업을 독려하니 환자들의 요양생활은 마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사또가 하루는 이동(李東)이라는 젊은이에게 작업을 시켰는데 이동은 자기 부락에서 갑자기 생긴 응급환자 때문에 일을 제때에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사또는 그를 감금실(병원 내에 있는 자체 감옥)에 가둬 놓고 여러 날 동안 심한 매질을 한 뒤에 끝내는 그를 단종(斷種)수술을 시켜 출감시켰는데 그때 젊은이가 쓴 애절한 시가 지금도 남아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 이하 생략 …… 수호 원장은 야심에 찬 자신의 계획으로 총독부나 일본왕궁의 총애를 받기도 했는데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환자들의 병세는 오히려 악화되었고 상처가 심한 상태에서 노예처럼 끌려 다니며 혹사를 당했다. 이때 매를 맞고 죽는 사람, 탈출하다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다. 3차 확장공사까지 끝낸 수호 원장은 드디어 자신의 동상 건립에 착수하는데 이때도 사또가 주동이 되어 환자들로부터 기금을 강요했다. 환자들은 자진 헌납의 명목으로 각 사람이 3개월분의 임금을 바쳐야 했으며 노동을 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들은 배급 식량과 의복을 팔아서 건립기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제작된 동상은 각계의 여러 인사들을 초청하여 제막식을 성대하게 가졌다. 그리고 매월 20일은 보은감사일(報恩感謝日)로 정하여 전 원생들을 자신의 동상 앞에 집합시켜 참배케 하였으며 공원 간수는 매일의 참배객 수를 부락별로 사또에게 보고함으로써 평일에도 참배를 강요당하곤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에 수호 원장이 자신의 동상 앞에서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보은감사일에 훈시 차 동상 앞으로 가던 수호는 이춘상이라는 건장한 환자가 휘두른 칼에 가슴을 찔렸는데 이때 이춘상이가 외친 말은 “너는 환자에 대하여 무리한 짓을 했으니 이 칼을 받아라”였다. 그 후로 수호 원장의 동상은 소록도 공원에서 자취도 없이 슬그머니 사라졌고 오직 하나이 원장의 창덕비만이 민족의 벽을 넘어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 후세에 그 공을 전하고 있다. 아무리 약자라 해도 그 약자를 힘으로 누르려 했던 자는 결국 약자의 힘에 의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슬프게 사라진다. 그러나 아무리 약자라 해도 그들을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했던 이는 바로 그 약자들에 의해서 후세에까지 그 빛을 널리 전하게 된다. 세상은 악하게 살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 인생은, 편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중에서/강길웅 요한 신부 (소록도 본당 주임)
Avec mon oie sauvage d'amour ense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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