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주 질문을 던지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오늘도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신다.
질문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러나 보통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부딪쳤을 때 잘 보려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때가 있다. 무엇을 결정하는 것보다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으로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모른 체 지나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너는 어떤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신다면 완벽한 답변은 못할지라도 늘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수님은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틈을 주시면서 소신있게 말씀하신다. 말이란 이기는 수단이 아니라 승복시키는 수단이다. 자신의 의견을 정직하게 표현하되 상대방을 얕잡아 보시지 않는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늘 나를 경각시킨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강압적인 방법을 쓴다면 듣는 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측은한 마음이 드셨다. 그들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지 느끼셨던 것이다. 하느님의 진정한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고난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러한 고통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자 하신다는 점이다.
오늘 복음에서 수종병자를 보신 예수님은 안식일 다음날까지 미루지 않고 즉시 낫게 해주신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단죄받게 될 것을 아셨지만 예수님은 전통을 따르기보다 그 자리에서 선과 자비를 행하시어 사랑이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신다. 그래서 율법의 목적은 봉사요 연민이며 사랑임을 가르쳐 주신다.
김희자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