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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 왜 이 여자를 선택했습니까? / 임문철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03 조회수809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르 12,28-34)

 

 

                     <왜 이 여자를 선택했습니까?>

 

 

 

                                       글쓴이 : 제주 중앙주교좌성당 : 임문철 주임신부님

 

 

아가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차마 말을 못하고 늘 후회하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단단히 결심하고 나섰다.

마침 보름달이 나지막이 떠오르고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고백하기 좋은 날이었다.

 

청년이 "자영씨...." 하고 불렀다.

그런데 자영씨가 정색을 하고

"왜요?" 하고 묻는 바람에

"저, 자영씨. 사, 사, 사탕 좋아하세요?"

했다는 것이다.

 

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만 보아도 심장이 두군거리고 가슴이 아려왔다. 사랑한다는 고백은 단 한 번만 해야 할 너무도 숭고한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유소 직원들도, 아파트 시공사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고 광고전단지에도 사랑은 넘쳐흐른다.

심지어는 사랑하기에 폭력을 휘두르고, 사랑하기에 나의 뜻을 강요하고, 사랑하기에 이혼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나를 위해 뭔가 해달라는 요구가 되고,

사랑한다는 말이 너를 필요로 한다, 너를 욕망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고 말았다.

 

혼배 주례를 하면서 가끔 짓궂은 질문을 던져본다.

"신랑은 왜 이 여자를 선택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이여자를 사랑하십니까?"

"예쁘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부의 이 예쁜 얼굴이 쪼그라들거나 망가지면 사랑하지 않을 겁니까?"

"아닙니다. 얼굴이 아니라 마음이 예쁘기 때문입니다."

"그럼 마음이 변해서 사나워지면 사랑하지 않겠네요?"

 

이 대목에 이르면 신랑은 말문이 막힌다.

사랑은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에 넘쳐 행복해 하는 두 남녀의 결합이 결혼이라면 결혼은 이기적인 두 인간의 야합에 불과하고, 그 순간 둘에게는 지옥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다.

그 기대가 크면 클수록 상처와 환멸도 크기 때문이다.

 

혼인진술서의 "당신은 어떤 조건을 전제로 이 혼인을 하는 것입니까?"

하는 질문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반문한다.

 

"그럼 상대방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사랑은 상대가 한눈 팔지 않고 나만을 사랑한다는 조건하에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내 늑방에 창을 깊이 찔러넣어도 내 안에서 사랑의 피와 물이 훌러나와야 참사랑이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더럽고 추하고 역겹고 나아가 배반과 모멸, 질시와 방해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다.

 

상대가 내 기대에 어긋나고 나를 괴롭힐 때!

바로 그때가 나의 사랑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할 때이다.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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