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23) 친절에 관한 생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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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정자 | 작성일2006-11-07 | 조회수705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얼마 전이었습니다. 밤 11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소슬한 밤거리를 걸어오고 있을 때였죠. 가로수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빈 박스를 힘들게 펴고 있었습니다. 뭐 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상자가 있길래 가져갈란다고 우물쭈물하면서 대답하는 거였어요.
몇발짝 걸어가다가 문득 할머니에게 마실 것이라도 사드시라고 5천원짜리 한 장을 드릴까 해서 다가갔지요. 마침 5천원짜리가 한 장 있었고, 알뜰살뜰 절약하며 살림하는 주부가 만원짜리 한장을 선뜻 주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고, 또 종이박스를 얼마나 많이 모아야 5천원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살던 우리 앞집의 할머니가 리어카가 쓰러지도록 겁나게 많은 박스를 쌓아야 그저 2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는걸 보아서 박스가 얼마나 돈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발길을 멈칫 멈추어 섰습니다. 팔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 할머니가 자식들 집에서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그냥 옛날 어른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분들이라 버리는 게 아까워서 가져가려는 건지도 모르는 데, 괜히 몇 푼 안되는 돈을 드린다는게 어쩌면 큰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사실 5천원어치 박스를 모으려면 무지하게 많은 양의 상자를 모아야 하니까 그 수고로움을 좀 덜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였지만 어줍잖은 친절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남편이 오래전에 승진을 위한 공부를 하기위해 도서관에 가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은 물론 방학을 하면 늘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책과 씨름을 할 적에, 점심식사를 가까운 분식집에서 해결했더랬죠.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식곤증이 오므로 가볍게 칼국수 정도로 때웠는데, 주인 아줌마가 국수도 점점 더 양을 많이 넣고 자꾸만 떡볶이나 튀김등을 더 먹으라고 주더라는 겁니다. 많이 먹으면 졸음이 와서 공부를 못하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친절을 베푸니 음식을 남기기도 그렇고 아주 곤란하더라는 거였습니다.
그시절 머리염색을 하지 않아 백발을 하고 있는데다가 편한 잠바때기를 걸치고 있으니까 아마 그 아줌마가 백수노인으로 알고 그랬나 보다고 하더군요. 백수 노인이 얼마나 며느리 눈치가 보이면 추운 겨울날에 매일같이 칼국수로 때울까 싶어 무척 측은한 눈길로 친절을 베푸는데, 됐다고 하면서 그 친절을 싹뚝 자르기가 곤혹스러워 결국 다른 음식집으로 가게 되더라는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고 불쌍해라! 졸지에 칠십넘은 백수노인이 되었으니" 하면서 깔깔 웃었는데, 그때 마침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나는 박스 줍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유하게 사는 노인이라면 허리가 꼬부라진 몸으로 그 한밤중에 거리에 나와서 박스를 주울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어서 오는 내내 머리 속이 복잡했습니다. 친절을 베푸는 것도 그래서 함부로 하기 어렵고 힘드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머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머리가 일찍 센 저의 남편이 40대적에도 백발로 다닐 적에, 버스를 타면 뒷통수만 보고도 쫓아와 "저기 자리에 앉으세요" 하는 아줌마들이 참 많았답니다. 오히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50대 아줌마들이, 남편의 머리가 하야니까 아마 칠십이 넘은 노인으로 짐작을 하고 친절을 베푼 것이겠죠. 사실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이거든요.
그런데 그들에게 나이를 밝힐 수도 없고 친절을 끝까지 마다할 수도 없고 얼마나 난처하던지 자리에 앉아서도 불편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젠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니까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답니다. 오히려 지금은 나이가 먹어 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는데, 모습이 젊어보이니 자리 양보 받던 그시절이 아! 옛날이여! 가 되었답니다.
무척 더운 여름날, 딸과 함께 시장 갔다 오는길에 무슨 악기인지를 켜며 가로수 밑에 앉아있는 노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할아버지 앞에는 동전 몇 개가 있는 바구니가 놓여 있었지요.
너무 안쓰러운 마음에 남아있던 천원짜리 넉장을 할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우동 한그릇이라도 사드셨으면 하구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돌연 딸이 손에 들고 오면서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달라고 하는 거였어요.
바로 앞의 가게에 가서 5백원만 주면 한 병 사서 마실 수 있을텐데..... 먹던걸 어떻게 드려요? 조기 가게에 가서 사서 드세요. 하고는 그냥 오면서 차라리 시원한 음료수 한병을 사드렸더라면 그게 더 그 할아버지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친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죠. 아니 그때 왜 냉큼 가게로 달려가서 음료수 한 병을 사다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나중에서야 했습니다.
사실 그때 그순간 저는 좀 발끈하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누구 한사람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는 숱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깐에는 크게 마음 먹고 남아있던 4천원을 몽땅 주었는데, 물속에서 꺼내주니 보따리 내어놓으란다고, 노인이 너무 하지 않은가 싶은 마음에 마음이 상했던 것이죠. 내가 준 4천원에서 5백원짜리 음료수를 사드실것이지 처녀가 먹고 있는 걸 내놓으라니..
시내에도 어쩌다 나가고 외출이 별로 많지 않아 웬만하면 그런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천원 한장이라도 꼭 주는데 그때는 정말 황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덥고 목말랐으면 그 할아버지가 남이 들고 있는 음료수 컵을 달라고 했을까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데 그 후로 한 번도 그 노인을 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만난다면 더울때는 시원한 쥬스를, 덥지 않을 때는 따끈한 차를 뽑아다 드릴텐데....... 두고두고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 남편에게 떡볶이와 튀김을 덤으로 주던 분식집 아줌마! 칼국수에 면을 듬뿍 덤으로 넣어주던 아줌마! 비록 핀트가 빗나가기는 했지만 그 마음속엔 사람을 동정할 줄 아는 측은지심이 가득 담겨있으니 고마운 것이지요. 그 아줌마에겐 우리 남편이 영원히 하릴없는 백수노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 고운 마음이 실망으로 깨어지지 않도록........
이상 내 경험으로 살펴본 친절에 대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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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을 베풀려면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베풀어야 한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고 친절이 아니다. 마음을 주는 것이 진정한 친절이다. 자비로운 마음이 함께 할 때 진정한 친절이 될 것이다. 그냥 돈 몇푼 주었다고 그것을 친절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친절은 오래오래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 큰 아이가 한살 때였다. 비가 오는 날, 원피스를 입고 굽있는 구두를 신고 아이를 안고 버스에서 내릴 때였다. 그때 차장 아가씨가 내가 앉았던 바로 문 옆 좌석 앞에 세워놓았던 우산을 집어 친절하게 펴주던 기억이 참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푸쉬맨처럼 승객들을 사정없이 밀어넣던 안내양이 많던 그 시절에 그 아가씨의 고운 마음씨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그렇게 친절은 오래오래 마음속에서 따뜻하게 기억될 때 진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친절은 자비로운 마음과 함께 했을 때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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