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배신을 이긴다. ( 마르 14,10~11)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그 구절을
한 주간 동안 내내 붙들고 살았습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 하고 유다를 몹시 미워했던 것이죠.
그런데 유다를 미워한 사람은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2천여 년 동안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유다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전 유다를 '덩달아 '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밥 먹듯이 자주 그분을 배신했으면서도
그것은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오직 '공공의 적'이 된 유다에게
모든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덩달아 미워하지 말고
덩달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를 비난하는 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 네가 무슨 권리로 유다를 미워하느냐? "
저는 끝내 저에게 유다를 미워할 어떤 권리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 사랑이 배신을 이긴다." 라고요.
아니, 사랑이 배신을 이기다니?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명제였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 '배신' 입니다.
믿지 않았으면 배신이랄 것도 없습니다.
배신을 당해 본 사람이 받은 상처는 그만큼 크고 깊으며,
그것이 치유될 만한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치유되기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신을 치유할 약은 '용서'와 '사랑'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은 배신을 이긴다." 라는 말은
유다의 배신을 묵상할 때마다 제가 함께 붙들고 있어야 할
하나의 화두(話頭)일것 같습니다.
"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유다 이스가리옷이
대제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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