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텅 빈 두 손조차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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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6-11-11 | 조회수738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11월 12일 연중 제32주일-마르코 12장 38-44절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텅 빈 두 손조차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주일미사 시간, 봉헌성가를 힘차게 부르면서 정성껏 헌금하는 신자들을 내려다보며 때로 부럽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희 같은 청빈서원을 한 수도자들은 통상적으로 봉헌금을 내지 않습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데다, 쥐꼬리만한 용돈을 아껴 써야 하기에 낼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도서원을 통해 삶 전체를 바친 수도자들이기에 교회에서는 봉헌에 관해서 관대하게 면제해주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전한 빈손을 내려다보며 송구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렙톤 두 닢을 봉헌하는 한 과부를 극찬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약간의 위로를 받습니다. 진정한 봉헌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정성이 담긴, 삶이 담긴 봉헌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위안을 갖습니다. 비록 헌금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 이외 다른 방식으로 무엇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봅니다.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금의 봉헌금보다 예수님으로부터 더 크게 칭찬받을 봉헌이 있습니다. 내 시간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그리고 이웃들에게. 수표 한 장 보다 더 소중한 봉헌이 있습니다. 힘겨워하는 이웃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입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를 통해. 힘을 솟아나게 하는 칭찬 한마디를 통해. 기쁨을 주는 격려의 말 한마디를 통해.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이 있습니다. 이 시대 또 다른 하느님의 얼굴인 고통 받는 이웃들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셔야 할 위로를 대신 베푸는 행위야 말로 예수님으로부터 극찬 받을 봉헌입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행위는 우리 인간들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어줌은 필수과목입니다.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고 모든 것을 무조건 꽉 움켜쥐고 있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나누는 법 한번 없이 사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내는 봉헌금의 단위는 아주 다양합니다. 봉헌금 정리하는 분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고액환 수표를 봉헌하시는 분 있는가 하면, 천주교가 천원권의 고향인줄 아시는지 죽어도 천 원짜리만 봉헌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께서 배춧잎 좋아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는지 꼬박꼬박 만 원짜리를 봉헌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떼구르르’ 소리가 다 들리는 동전을 봉헌하는 분도 계십니다. 봉헌금의 액수가 커야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봉헌금의 액수가 살림의 형편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텅 빈 제 두 손을 바라보며 이 텅 빈 두 손조차 하느님께 봉헌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봉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정성입니다. 내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실 중에서 가장 값진 것, 내 인생, 내 젊음, 내 삶 전체를 하느님께 바친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무성의한 봉헌, 마지못한 봉헌, 습관적인 봉헌, 의무감에 의한 봉헌이 아니라 자발적인 봉헌, 잘 준비된 봉헌, 정성스런 봉헌, 사랑이 담긴 봉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봉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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