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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밥좀 주소 / 정만영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5 조회수977 추천수9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밥 먹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어찌 보면 예수님도 참 할 일이 없으신지 시시콜콜하게 남들 밥 먹는 것까지 참견하신다고 할 사람도 있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밥 먹는 것까지 참견하신다고 불편해 하는 사람은
아마도 밥 먹는 것을 그리 고민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일 것이다.
소위 ‘배가 따듯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배 가죽이 등에 붙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턱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밥 한 끼 먹을 것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밥은 하늘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오늘 밥 살테니.. 네가 다음에 사라..’
혹은  그 반대로 ‘네가 오늘 밥 사라, 내가 다음에 살게...’ 를 대수롭지 않게 형식적인 인사치례를 한다.
여기서 밥은 만남의 수단 혹은 서로에게 있어 친교의 수단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자신이 먹은 것은 각자가 부담하는 터치페이가 보편적이다.
이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 방식이 쿨하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는 더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 역시 구세대(?)인가 보다.

밥을 사줄 수 없는 사람,
자신이 먹을 밥조차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한다.
내가 밥을 사면 내게 밥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밥을 사 주지 말라.
내가 밥을 사 주더라도 밥 살 형편이 못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사 주어라.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친목과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은 밥을 목적으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생명을 좌지우지 하는 밥을 수단으로 삼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 자체로 밥은 충분히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은 단순히 밥알 몇 개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는 행위이기에
밥은 하늘이기에 하느님께서 갚아 주신다고 하셨다.


이렇게 생명이자 하늘인 밥을 얻어먹은 경험을 나누고 싶다.

12년 전 1994년 11월 말....초겨울이 막 시작할 때..
허원을 두 어달 남기고...
나를 포함한 14명의 동기들이 공동식별을 한 후..
각자 순례여행을 떠나기 위해 수원 수련원을 나섰다.

말이 순례여행이지...무전여행이었다.
당시 수련장이셨던 이한택 주교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허락한 품목보다 더 엄격했다.
소지품이란...
입은 옷과 신발...주민등록증...여행수단은 도보. 차를 얻어 타서도 안되었고 무조건 걷는 원칙이었다.
복음의 정신은 사라졌고(?) 둘씩 짝지어 가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서 갔다 오는 것이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신분도 밝히지 말아야 했다.
(즉 구걸하기 위해 내가 순례중인 수도자란 사실도...)

나는 수원 수려원(말씀의 집)을 떠나 발안, 삽교천, 공세리 성당, 솔뫼를 거처 해미까지 갔다
다시 온양을 거쳐 병점을 돌아오는 일주일 일정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해미성지를 가기 위해 한티 고개를 넘어 섰다. 물론 여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점심 무렵,
한티고개를 넘어 섰을 때, 배가 너무 고파서 어느 허름한 집에 들어가 밥을 구걸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 한분만이 계셨다.
너무 배가 고프니 찬밥이라도 달라는 내게
그 할머니는 찬밥 밖에 없어 따스한 밥을 주지 못한다고 연신 미안해하며
밥 그릇 가득히 잡곡밥을 담아 내 오셨다.
그리고 반찬 몇 가지,...
어떻게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다. 이 날 하루 동안 처음 먹은 밥이었을 것이다.

이 밥을 먹고 힘을 내어 다시 해미읍성까지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갔다.
해미읍성의 회자나무와 다리.
해질녘의 그 어스름한 덤벙에 있던 십자가의 길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 후 해미성지 창고에서 잠을 자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지순례를 마치고 수련원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이 무전여행에서 한 가지 교훈이라면 무전여행 할 때.........,
절대로 교회와 성당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수녀님들과 목사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미워했다. 문전박대도 그럴수가 없었다.
배고프면 절에 가면 늘 배부르게 먹는다는 사실이다.>

그 후..
늘 언제 시간이 되면..다시 한 번 그곳을 가고자 했다.
무전여행도 좋고..차로도...
차일피일 미루다...
지난 10월 26일 금요일에 겨우 갈 기회가 있어 해미성지를 가기위해 한티고개를 다시 차로 넘어가게 되었다.
굽은 길을 넘어가며 혹시 그 집이 아직 있는지..
그 할머니께서 아직 살아계실까...하는 생각들을 했더랬다.
다행이 그 집은 눈에 띄었지만 다 쓰러져가고 있었고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그 집을 기웃거리다 마침 배달 온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다.
그 우체부께서 그 할머니 계신 곳을 알려 주었고 술 취한 할머니를  차에 태워 올 수 있었다.

12년이란 시간이 지나..
할머니나 나 역시 서로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비록 술취하셨지만 당신께서 이 집에 오랫동안 사셨다고 했다.
내게 밥을 주셨던 그분임이 이 할머니임이 분명했다.  
그분은
내가 12년전에 당신에게 밥을 얻어 먹은 청년인데..이렇게 인사하러 왔다고 하자..
자네도 되게 많이 늙었다고 농담하시며 웃으시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이빨도 빠지고 주름이 온 얼굴을 뒤 덮었지고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고 구부정한 허리지만...
이 세상에서 살면서 밥을  퍼준 결과가 아닌가 했다.
남에게 얻어 먹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던 내게 밥을 주셨던 분이 아니었던가.
당신의 따스한 마음을 나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식들과
이 세상에 다 퍼줘서
이빨도 빠지고,
허리도 휘고,
머리도 세어졌고,
주름살도 늘어난 것 같았다.

작별 인사를 하며 떠나려는 내게 계속 집 뒤 뜰에 있는 단감을 따가라고 하셨다.
그분이 12년 전에 그랬듯이...

할머니 !
당신이 주셨던 찬밥과 단감은 제 마음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듯이...
남은 여생 건강하세요...


PS : 14명 수련원을 떠났지만 13명만이 되돌아 왔다.
맨 막내 형제는
밥을 못 얻어 먹어서인지, 밥 얻어 먹을 용기가 없었던지 순례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귀향을 했다.
밥을 잘 얻어 먹고 힘은 충분히 얻은 13명만은
1995년 2월 5일에 청빈,정결,순명으로 예수회원으로 살고자 허원을 했다.
그 후 1명이 또 다른 순례의 길을 선택했고,
현재 12명이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미국, 조선땅에서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예수회원으로 순례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날씨가 많이 쌀쌀해 졌습니다.
없는 사람들이 지내기 힘겨운 겨울이 다가옵니다.
밥 한 그릇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
이 세상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잠시 헐벗은 익명의 순례자에게
가진 만큼 무거운 짐...
밥 한 그릇 비우시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혹시 나눔을 하실 곳을 찾아 고민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사랑과 기도에 굶주린 이 순례자를 위해 화살기도 한방 쏴~~ 주시길..

좋은 하루  ~!~

 

                                                         <예수회 홈 페이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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