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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끝은 시작 ----- 2006.11.19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19 조회수816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11.19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다니12,1-3 히브10,11-14.18 마르13,24-32

                                                            

 

 

 

 

끝은 시작



수도원 늦가을의 아름다움도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 석양(夕陽)빛에 물들어가는 단풍들과

나목(裸木)이 되어가는 은행나무들을 보는 순간 저절로 생각난 글입니다.


“노년의 아름다움은/가을 단풍 같은 것

  노년의 온유함은/가을 석양빛 같은 것
  노년의 진실함은/겨울나무 나목 같은 것“


이렇듯 준비 된 노년 후의 축제와 같은 죽음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오늘 주님은 다음 말씀으로 복음을 결론 맺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세상 종말이요, 종말과도 같은 죽음입니다.

살다보면 갑작스런 친지들의 죽음에 망연자실할 때도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죽음 있어 삶이 선물이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마지막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이자 순종이 죽음이요,

삶의 결론과도 같은 죽음입니다.


마찬가지, 반대로 삶이 있어 죽음 역시 선물이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삶을 보면 죽음을 알 수 있고, 죽음을 보면 삶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까이 실감할 수 있는 건

세상의 종말보다는 개인의 종말과도 같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통해 세상의 종말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죽음의 종말이든, 세상의 종말이든

그 종말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죽음의 끝은 새 생명의 시작입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이어 죽음과도 같은 겨울이 끝나면

생명의 봄이 시작됩니다.

 

수확이 끝난 텅 빈 배 밭이지만

머지않아 전지와 더불어 배 농사가 시작됩니다.

 

이런 평범하면서도 사소해 보이는 자연의 이치도

은연중 우리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파스카의 믿음이

이 회색빛 우울한 11월 위령성월, 허무의 달을,

희망의 기쁨으로 충만한 달로 바꿔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도 세상의 종말은, 죽음의 종말은

새 삶에로의 구원임을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네 백성의 보호자, 미카엘 대천사가 나서리라.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치욕을, 영원한 치욕을 얻으리라.”


이런 마지막 구원의 심판의 말씀이

우리의 나태한 삶을 분발시켜 깨어 살게 합니다.

 

복음의 주님 말씀도 똑같은 내용입니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종말 구원의 심판에서 벗어날 자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때’를 아버지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니 늘 깨어 살 수 뿐이 없습니다.

이미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늘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의 죽음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네딕도 성인은 물론 모든 사막수도교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충고 말씀을 주십니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고,

아니 죽음을 넘어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미 세례로 주님과 함께 죽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우리들,

이미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평생 이 ‘영원한 생명’을 가꾸고 돌보는 것이 영성생활의 요체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육화되어가면서 충만한 생명입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말씀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영원히 살게 합니다.

참으로 진실하고, 좋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합니다.

 

믿음, 사랑, 희망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합니다.

살아서 현명했던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빛나고,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날 것이라고 주님은 다니엘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우리를 정화, 성화시켜 주시는 하느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여 우리는 건강한 영혼에 건강한 육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자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당신 자신을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계십니다.

 

생명의 말씀과 사랑의 성체를 통해 만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매일 미사의 은총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수능고사 날 어느 어머니가 수험생 자식의 도시락에 써 넣었다는,

간절한 기도와도 같은 연애편지가 감동적이라 인용합니다.


“내 아들 상호야!

  하느님이 너를 사랑하시고 엄마도 너를 정말 사랑한다.

  내 아들 상호의 손이 마스터키가 되어 모든 문제를 술술 잘 풀기를 기도한다.”


과외하나 제대로 못 한 아들인데,

영어 답을 맞춰볼 때는 손이 과연 마스터키가 되었던지

잘 모르고 찍었는데 여러 개 더 맞았다고 아들이 무척 기뻐했다는

상호 어머니의 전갈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마스터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서 샘솟는 사랑입니다.

 

이런 믿음의 어머니 안에 사랑으로 육화된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이런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진정 영적 부자들은 풍부한 사랑 추억의 소유자들입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오시는 참 좋으신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성체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어,

참 진실하고 좋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침내 축제와도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주님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을 누리리이다.”

  (시편16,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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