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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람 만나기가 두렵다 . . . . . . [이수일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0 조회수1,075 추천수13 반대(0) 신고

 

 

 

 

 

 

'철들자 안녕' 이라더니,

나이가 들어가며 버릇없이 하느님 앞에 감히 강자 행세를 한다.

 

목과 어깨에 힘주고 한국 교회를 내 어깨에 짊어진 양..

분수없이 행동하여 모든 것을 나 자신의 능력에만 초점을 맞춰버리고만다.

 

몇 개월 전에 망신을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속상하다!

 

어느 교우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갔는데,

화제가 정치인들에 관한 문제로 번져 갔다.

 

평소에 신문 사설을 많이 읽는 나로서는 약간 으쓱대면서

-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 - 는 등 한참을 신나게 늘어놓았다.

 

어쩌다 정치인을 만나게 되면 뭔가 불쾌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혐오감마저 느꼈던 터라

내 말 속에는 어느덧 가시가 돋혀 있었다.

 

남의 약점을 겁없이 난도질하고

허공 속에 떠도는 근거없는 말들을 남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내 말을 조용히 듣고 난 상대방은

 

"신부님은 공인이 아닙니까?

 종교계에서는 그래도 사람들에게 말로써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성직자들이

 마구 지껄여대는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참담한 허탈감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라며 재치있게 화제를 다른 것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교우는 일류 대학의 정치학과 출신이었고

사법고시에도 합격했으나 그 화려한 법관 자리를 물리친 사람이었다.

 

살면 살수록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 말하는 것인데,

이번처럼 힘들게 느껴본 적이 없다!

 

남의 약점을 절대로 매도하지 말아야 한다고 눈만 뜨면 반복하고 있는데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머저리 같은 자신에게 곧잘 실망을 한다.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공인의 자격으로 옮겨졌을 때는

상대방에게 실망이나 허탈감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인격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그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곰곰히 그 교우가 일깨워 준 [공인]이라는 말을 되새겨 본다.

옹졸하고 편협한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먹은 게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까지 먹으며

말의 두려움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 교우의 교양있는 세련된 태도가 얄미우리만큼 부러웠다.

 

사람 만나는게 점점 두려워진다.

지식인의 똑똑함을 신물나게 봐야 하고

또 그런 내 꼴을 신물나게 보여줄까봐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나를 봐도,

만나는 사람들을 봐도,

지식은 있어도 지혜가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같다.

아니,

지식 때문에 지혜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때는 나도 지식이 많은 사람에게 매료되기도 했지만

지혜을 갖추지 못한 지식은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소위 신앙 고등교육에 많은 열을 올렸다.

그러니까 그동안 고급두뇌를 많이 양성해 왔다.

 

유행처럼 보이는 각종 [신(新) 신심운동]의 교육을 수료하는 것이 구색을 갖춘 현대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알면 알수록,

그리고 봉사를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자신의 가난에 눈이 떠져야 할 텐데,

하느님의 능력은 약한 사람들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데......,

 

주님, 오늘도 제발 우리를 약하게 하소서!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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