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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독서는 요한 묵시록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다음 주가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지요.
이 시점에서 우리 교회는 종말의 의미에 대해서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종말에 대한 비유 하나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열 미나의 비유입니다.
어떤 귀족이 먼 고장으로 떠나면서 종 열 사람에게 열 미나를 나누어주며,
벌이를 하라고 말합니다.
귀족이 돌아 왔을 때,
첫째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었고,
둘째 종은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었고,
다른 종은 한 미나를 그냥 가지고만 있었고 하나도 벌지 못했습니다.
귀족은 첫째 종과 둘째 종에게는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고 칭찬하시며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주시는 반면
다른 종에게는 가진 것마저 빼앗아 첫째 종에게 주게 됩니다.
이 열미나의 비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의 시작을 살펴보면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을 좀 바꾸어 보겠습니다.
“종말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가 당장 나타나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이제 다가오는데 무슨 걱정이냐?”
하고 하던 일을 모두 놓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종말의 자세는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격언과 비슷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기 때문에 하던 일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원래의 취지와 목적대로 다시 돌아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이는 예전에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과 비슷합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기 때문에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인생의 의미, 우리가 사는 목적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인데,
그렇지 못했다면 이제 예수님을 보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사랑할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다섯 사람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참 편합니다.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위험에 빠질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어미 고슴도치가 새끼 고슴도치를 품에 안는 것처럼
그렇게 아픈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종말에 대한 자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사랑의 능력을 덮어두고 쓰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은 누구에게나 주셨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방법의 차이가 있겠지만,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총동원해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나영훈 안토니오 신부님 강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