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멍청아! 여기는 군대야! . . . . . . . .[김영진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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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혜경 | 작성일2006-11-23 | 조회수805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군대의 신병 훈련소에서 지금도 쓰이는 말이 있다.
갓 입소한 신병들에게 으례 군복과 군화가 지급되는데, 칫수를 재지 않고 그냥 하나씩 주는 것이므로 제 몸에 맞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다.
나는 신부생활을 하다가 목사님들, 스님들과 더불어 장교 교육을 받기위해 보병 학교에 입소한 적이 있다.
그때 머리를 빡빡 깎고 비쩍 말랐으면서도 키는 장대같이 큰 스님 하나가,
"내 군화가 작으니 바꾸어 주시오."
하고 앞에 있는 중위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자 중위는
"군화가 작은 것이 아니라, 네 발이 큰 것이다. 그러니 네 발을 군화에 맞춰라!" 라고 하지 않는가!
그말에 그 스님은 화를 발끈내며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하고 항의하자
중위는 그 줄 앞으로 스님을 나오라고 하더니 꽥 소리를 지른다.
"이 멍청아! 여기는 군대야, 하라고 하면 해!"
이 얼마나 잘못된 논리인가? 군대니까 신을 발에다 맞추는 게 아니라 발을 깎아 내서라도 신에다 맞추라니...,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해서인가? 어쨌든
"신부님, 세상은 그게 아닙니다. 신부님처럼 세상을 살면 바보요 천치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는 없겠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그러니 신부님, 너무 신부님 생각만 주장하지 마십시오."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정상이긴 하지만, 세상에 살고 있으니 좀 세상에 적응하며 적당히 살아야 한다는 충고가 내포된 말이다.
아무리 하느님을 믿어도 세상에 맞춰서 적당히 살아야지, 지금까지 이렇게 된 세상을 다시 거꾸로 돌려서 하느님을 맞출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제법 그럴싸한 논리 중의 하나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군대에 가면 군대의 논리를 세상에 살자면 세상의 논리와 타협해야 한다면, 하느님의 법은 어디에서도 써먹을 곳이 없다.
낙태 요청, 성윤리의 타락, 가정 생활의 파괴, 마약 문제, 부정 부패, 빈곤 문제, 살인, 도박 등에 적당히 타협하며 이세상을 살아야 된다는 논리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로마에 가도 하느님의 법을, 군대에 가도 하느님의 법을, 세상에 살아도 하느님의 법을 따르자!"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세상이 바뀌니까 하느님의 법도 바뀌어서 적당히 되어야지, 세상은 변하는데 하느님의 법만 변하지 않으면 되겠느냐면서 아주 지혜로운 척하고, 한편으로는 세상사에 닳고 닳은 사람들에게 분명히 천명하신다.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리라. 그러므로 작은 계명이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남을 어기도록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으리라.
그러나 작은 계명이라도 스스로 지키고 남을 지키도록 하는 자는 큰 사람 대접을 받는다."
이 말씀은
"여기는 군대야, 그러나 네 발을 깎아 내서 신에 맞춰라." 라는 논리.
"여기는 세상이야, 그러니 하느님의 법은 잠시 눈감아 두고 부조리와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야 된다."
라는 논리에 도전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의 것이 아니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힘들고 어려워도 하느님의 법을 스스로 지키고, 나의 가족이, 나의 자녀가, 나의 이웃이 지키도록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 [밀가루 서말짜리 하느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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