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 종
세상의 그리움 다 안아 보구
세상의 미움들 다 담아 보네
별님 안아 보구
달님 담아 보네
내님도 안아 보네
본래의 마음자리에는 세월의 흐름도,
너와 나의 그림자도,
모양이나 걸림 따위는 애초부터 없는 것이니‥‥‥,
마음이란 옷자락을 가볍게 벗어 놓고
묵묵히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려무나.
그러면 차 한잔 다리는 손 놀림 속에서도 도의 세계,
성숙의 세계를 배울 수 있단다.
다포(茶布)를 깔고, 다구를 늘어 놓으며,
놓이는 세상의 이치를 보고,
팔팔 끓는 다관의 물소리를 들으며,
사바의 고뇌와 아픔, 끈끈한 삶의 부대낌을 느껴 본단다.
찻닢을 꺼내면서 번지는,
새의 혓바닥 같은 작설의 살 내음에‥‥‥
차를 따는 여인의 정갈한 가슴과,
차를 볶는 아낙의 따스한 손끝도 생각해 본단다.
곱게 달여진 차가 찻 종에 다소곳이 담겨져 있음을 볼라치면,
빠알간 그리움과 노란 미움들이 녹아지고 있음을 느낀단다.
별들과 달들이 녹고,
가슴까지 녹는 따스함도 접해 보게 된단다.
마시고 난 뒤의 빈 잔 속에서 비움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모두 제자리 돌려 놓는 행장 속에서
본래의 제 모습들을 돌아보며,
평상의 작은 일상이 그대로 공부요,
삶임을 온 몸으로 느낀단다.
행복은 저 산 너머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잔의 차는 한 조각의 마음에서 나왔으니
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어라...
우리들 생활 속에,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
평상심이 도(道)라고 선현들은 알려 주신단다.
- 석용산 스님의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가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