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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4 조회수93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6년 11월 23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It is written, My house shall be a house of prayer,
but you have made it a den of thieves.”

(Lk.19.46)

 

제1독서 요한묵시록 10,8-11

 

복음 루카 19,45-48

 

저는 그저께 저녁부터 어제 낮까지 눈앞에 뵈는 것 없이 살았습니다. ‘눈앞에 뵈는 것이 없다’고 하니까 조금 이상하죠? ‘이 신부가 막무가내로 살았다는건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정말로 눈앞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글쎄 안경을 이틀 동안 쓸 수가 없었거든요.

이틀 전, 강화지구 신부님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눈앞이 너무나 흐리다는 생각이 들었고, 휴지로 안경알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안경 코받침 중의 하나가 똑 하고 부러진 것입니다. 이 코받침이 없다고 해서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썼습니다. 하지만 코받침 없이 안경을 쓰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코가 눌려 아프다보니 잘 보이지 않더라도 안경을 쓰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안경점가서 수리를 했던 어제 저녁때까지 불편한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지 한쪽의 안경 코받침이 없었을 뿐인데, 너무나도 불편한 생활이었습니다. 안경에서 앞을 보게 하는 렌즈와 귀에 걸을 수 있는 안경다리만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가장 작은 부분처럼 보이는 코받침도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네요.

생각해보니 나도 이렇지 않을까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의 재능과 능력. 그러나 그 보잘 것 없는 능력과 재주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장면을 보여줍니다. 물건 파는 이들을 쫓아내시면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말씀하시지요. 이 말을 듣던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던 수석 사제, 율법학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이 사람들이 성전에 물건을 팔 수 있도록 허락을 했기 때문에 바로 자신들에게 ‘강도’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 말에 기분 좋았을 리가 없겠지요. 이제까지 누구나 다 자신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데,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싫은 소리만을 계속해서 퍼 부으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예뻐 보였을까요? 사랑스럽고, 그런 말씀을 해주는 예수님이 감사했을까요? 아니지요. 이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찾았습니까? 물론 나중에는 십자가상의 죽음이라는 방법을 찾았지만, 이 순간에는 그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이 구절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재력과 권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가장 소외된 사람들만이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예수님을 없애지 못하도록 지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능력을 축소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지요? 하지만 나의 이 부족함도 주님을 지키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경 코받침도 생활하는데 너무나 중요합니다. 설마 나의 이 몸뚱이가 코받침보다는 못한 것은 아니겠지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봉헌할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요? 귀하게 창조된 나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판단력(조용헌)



세계 역사상 대단한 판단력을 보여주었던 인물은 로마 천년의 스타였던 카이사르이다. 카이사르가 내렸던 판단의 황금률은 이것이다. “나(카이사르)에게 유리하면서도 로마에도 유리한 일을 나는 결정한다.” 보통 일을 하다 보면 자기에게 유리한 일은 전체에 해가 되기 쉽고, 반대로 전체에 유리한 일은 자기에게 불리한 쪽으로 작용하기 쉽다. 카이사르는 이 두 토끼를 모두 잡았다.

내가 만나본 기업가들 중에서 교보문고를 창립한 대산(大山) 신용호(愼鏞虎·1917~2003)도 두 토끼를 잡는 판단을 내린 사람이다. 신용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독학(獨學)이 그의 학력의 전부였다. 오로지 책이 그의 선생이었다. 고독한 독서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정규교육 과정을 대신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게 할 수 있을까? 그의 염원은 책이었다.

1981년 서울시 한복판에 23층의 교보빌딩이 완공되었을 때, 금싸라기 땅인 지하매장에 과연 어떤 점포를 입주시킬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산은 그 자리에 서점을 내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사무실 임대료 수입에 비해 서점을 낸다는 것은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대산은 책에 한이 맺힌 사람이었으므로 눈앞의 타산을 뛰어넘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눈앞의 구체적인 이익을 포기하고 미래의 추상적인 선(善)을 선택하는 결정은 어려운 판단이다.

그 판단 덕택에 오늘날 광화문 교보문고는 세계적인 서점이 되었다. 대산의 이 결단은 ‘자리이타’(自利利他·자신에게도 이롭고 타인에게도 이롭다)의 모범을 보여준 판단이었다.

 

 

 

They could find no way to accomplish their purpose
because all the people were hanging on his words.

(Lk. 19,48)

 

바람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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