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행복 ( 마르 16,9~18)
어느 날 친구 신부 하나가 프랑스에 공부하러 왔습니다.
제게는 참 힘이 되는 친구라, 반가운 마음으로 루르드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의 대화는 '듣는 행복' 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어 왔습니다.
처음으로 복음을 들었을 때 느꼈던 그 새롭고 신선했던 열정이
식어 버린 이유도 그동안 너무 많이 듣고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
우리 인간들이 신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신의 이야기를 우리의 말과 귀로 담아 내고
전할 수 있다는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성당에 있으면 그분의 말씀을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도
생활 속에서는 남남이 되어 버린 나의 일상과 성서,
그리고 나의 이기심과 나의하느님....
그것은 듣지 못하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교만 탓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던 제자들처럼,
굳게 닫힌 우리들의 마음 탓입니다.
너무 많이 들어 귀가 무뎌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 수많은 말 가운데 진리와 복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겠지요.
홍수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라고 들었습니다.
휩쓸려 간 집이며 농지며 수많은 인명들...
이 아우성은 어쩌면 우리 하느님의 초대일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뭔가 들려주시려는 하느님의 음성일지 모릅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가까이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들을 귀가 있는사람은 알아들으라고 재촉하시면서요.
우리도 더는 귀를 막지 말고 하느님께 이렇게 속삭여야겠어요.
" 하느님, 당신 말씀을 듣는 것이 행복해요! " 라고요.
" 마지막 으로 열한 사람이 식탁에 자리잡고 있을 때에 나타나셨다.
그분은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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