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저는 오늘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다”는 말씀에 주목해봅니다.
우리는 흔히 모세가 누린 영광이나 엘리야가 가졌던 엄청난
기적의 힘을 부러워합니다.
그렇지만 모세가 그 영광을 얻기 위해 쏟은 세월과
행적은 생각해보셨는지요? 모세가 엄마젖을 먹으면서도 이집트 공주의 양아들로
키워져야 했던 일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도망자가 되어서 장인 집에 얹혀
살았던 40년을 헤아려보신 적은 있으십니까? 엘리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후에 이세벨이 무서워 숨었던 심정을 느껴보신 적은 있습니까?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빵으로 연명한 그 날들을 기억해보셨는지요?
그럼에도 모세와 엘리야는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이며 다른 점일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알 뿐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의 속 깊은 사정을 헤아리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기다림의 시간에
조급해합니다. 살아 계신 그분께서 알고 계시고, 살아가는 나를 보고 계신 것을
안다면 조급해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는 꼭 필요해서
허락하시는 그분의 섭리임을 믿으십시오.
기다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분께 희망을 품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분의 눈에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