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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7 조회수769 추천수9 반대(0) 신고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루카 21,2-4)


  이제는 다 커버린 두 아들 녀석들을 바라보며 문득 둘 째 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생각이 납니다. 무뚝뚝한 첫 째 아이와는 달리 잔정이 많은 아이입니다. 제 엄마 생일이라고 동네 백화점에서 양말 두 켤레를 사서 곱게 싸들고 겸연쩍은 듯이 내놓는 손이 얼마나 예쁘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 때는 나이가 어린 저학년 시절이라 용돈도 따로 주지 않았을 적입니다. 아마 친척 어른들이 만날 때 마다 학용품 사서 쓰라고 준 돈을 아껴 모아 두었나 봅니다. 집사람은 뜻밖에 막내가 보인 예쁜 짓이 하도 기특해서 내가 사다준 장미 꽃다발은 안중에도 없더군요.

  그 꽃다발은 벽에다 걸어 놓고 말려두어, 그 후 몇 달인가 계속 그 꽃다발을 사다준 것을 제가 생색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람은 십년도 지난 지금도 그 양말을 선물 받은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아이 듣는데서 더 말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어버이 날이라고 엄마, 아빠 얼굴 그린 그림과 카네이션을 만들어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첫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마도 제 용돈을 쓰지 않고 모았다가 사다준 그 행동이 갸륵해서입니다. 그 나이 또래 사내 녀석들 유난히 쑥스러움 많이 탑니다. 제 아이들도 그런 편인데 용기를 내어 선물을 골랐다는 것이 더 대견해서입니다. 아마 집사람이나 저는 이 기억을 자주 떠올릴 것입니다. 혹시라도 아들에게서 섭섭한 마음이 들 때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삭이겠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성전 봉헌함을 지켜보신 것입니다. 누가 얼마를 봉헌하는지 지켜본 것이 아닙니다. 이 과부가 자기의 전부를 봉헌하는 갸륵한 마음씨를 칭찬하고, 그 모습을 보시고 당신이 느끼셨을 기쁨과 희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봉헌이라도 자신의 사랑을 담고 있는 행동이라면 그것을 더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오래 기억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서 받은 작은 선물을 더 오래 기억에 새겨두는 것이 다 주님 모상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피천득님께서 쓰신 장미라는 제목의 수필을 같이 읽고 싶어 여기에 올려 봅니다.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 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드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 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그의 꽃병에 물을 갈아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내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하지도 않고 받아가지고는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했다.


  이 수필을 읽으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갖는 속 깊은 정이 얼마나 잔잔하게 담겨 있는지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피어오릅니다. 빈 화병을 보면서 느끼는 서운한 마음은 아마도 주님께서 메워주시겠죠. 그 빈 화병의 모습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음(空)”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비워내려고 노력하기보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비움을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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