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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 단추와 마지막 잎새
작성자배봉균 쪽지 캡슐 작성일2006-11-27 조회수852 추천수13 반대(0) 신고

 

 

 

 첫 단추와 마지막 잎새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라면도 없던 1960년대 초반, 남대문 시장의 주된 상품은 미군과 한국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과 미국 등에서 건너온 구제품(救濟品: 구호물자) 이었습니다.

 

 시장 노점식당의 먹거리 메뉴 또한 보잘 것 없어 미군부대 식당에서 먹다남은 것을 모아다가 큰 솥에 넣어 푹푹 끓인 ’꿀꿀이 죽'(부대찌개의 원조)으로 너나 할거없이 허기를 채우고 영양보충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은 1963년에 9월에 처음으로 생산,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저도 방과 후나 휴일이면 친구들과 함께 남대문시장으로 몰려가 신발(워카라고 부르는 군화)도 사 신고, 군용 개인장비(배낭, 담요, 수통 등)도 마련하여 등산도 가고, 방학 때는 무전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꿀꿀이 죽도 맛 보았습니다.

 

 얼마 후 대학생이된 저는 남대문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대학생들에게 유행하던 패션은 군복을 검게 염색하여 입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장 뒷 골목에는 군복을 몸에 맞게 수선해 주는 가게와 염색을 해 주는 집이 꽤나 여럿 있었읍니다. (※ 여기서 유행은 돈과 다양한 의류가 없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행입니다.)

 

 같은 군복이라도 우리나라 군인들의 군복보다는 미군들이 입는 군복이 더 인기가 있고 값도 비쌌으니, 그 이유는 품질이 좋고 디자인 또한 첨단을 걷는다는 시장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었나 봅니다. 미군복 중에서도 ’시보리 쟘바’라는 외투가 인기가 있었는데, 단추는 없고 지퍼와 찍찍이(매직 태이프), 대형 스냎(똑딱 단추)를 사용하여 제조한것이 여간 신기하고 편리하지가 않았습니다. 에리(칼라)뒤 쟈꾸(지퍼)를 열면 모자도 들어 있는 것이 요즈음 유명메이커의 등산졈퍼나 차이가 없었습니다. 실은 뒤에 나온 상용품이 군수품의 기술을 모방하고 사용한 것일테지만..

 

 영어로 버튼(button)이라고 하는 단추는 옷을 여미거나 푸는데 편하게 하기 위한 기능적 목적과 장식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의 총칭을 말하며 속된 말로 ’보당’이라고도 합니다. 버튼(단추)에는 초인종의 누름단추등의 다른 뜻도 있으니 카메라의 셔터, 총의 방아쇠, 컴퓨터의 키보드, 마우스버튼, 무시무시한 핵(核)단추도 모두 단추의 일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1962년 10월 22일~11월 2일의 11일간 구소련의 핵탄도미사일(ICBM)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일보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를 ’쿠바미사일위기(Cuban missile crisis)’라고 합니다.

 

 1962년 10월 22일 미국 대통령 J.F.케네디는 텔레비젼 전국 방영을 통하여 "소련은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강력히 대처하여 10월 28일 소련 수상 후루시쵸프는 미사일의 철거를 명령하고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 선단의 방향을 소련으로 돌림으로써 11월 2일 일촉즉발의 핵전쟁 위기는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소 간에 ’핫 라인(hot line:긴급통신연락선,직통전화)’이 개설되었고, 핵전쟁 회피라는 공통의 과제하에서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모스크바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핫 라인을 개설한데에는 정신병자의 소행이나 실수로 핵단추를 잘못 눌렀을 때를 대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단추가 있습니다.

 

 

 파란 단추, 노란 단추, 빨간 단추, 깨어진 단추, 똑딱 단추, 찍찍이, 지퍼, 고유(固有)의 옷고름과 대님, 금(金) 단추, 은(銀) 단추, 구리(銅)단추, 쇠(鐵)단추, 뿔(角) 단추, 호박(琥珀) 단추, 옥(玉) 단추, 프라스틱 단추, 그리고 가공(可恐)할 핵(核) 단추....등 등.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단추는 ’첫 단추’입니다.

 

 

     *                                 *                                 *                                 *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텔레비젼도 못 보던 1960년대 초반,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미국 작가 오 헨리(Henry.O.1862~1910)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읽고 느꼈던 감동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읽어 보셨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간략하게 소설의 줄거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워싱턴 광장 서쪽에 ‘그리니치’라는 빈촌이 있었다. 이 마을의 초라한 벽돌집 3층에는 ‘수우’와 ‘존시’라는 젊은 화가 지망 여성이 함께 살고 있었다. 11월에 존시가 폐렴에 걸린다. 그래서 친구 수우는 의사를 불렀다. 진찰결과, 의사는 “저 아가씨가 회복될 가망은 열에 하나 정도요. 당신 친구는 자신이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어떤 훌륭한 처방도 소용이 없을 거요”라고 말했다. 존시는 창 밖 6미터 정도 떨어진 담벼락에 잎이 거의 떨어져가는 담쟁이 덩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 담쟁이 잎이 네 개 남았군. 오늘밤이 지나면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겠지. 그리고 나도 죽을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수우네 바로 아래층에는 40년의 화가생활로도 성공을 못한 ‘버먼’이란 노화가가 살고 있었다. 그는 늘 걸작품을 그릴 거라고 장담하곤 했다. 어느 날 노(老) 화가는 죽어가는 존시 이야기를 듣는다. 그날 밤엔 진눈깨비가 내리고 거센 바람이 불었다.

 

 다음날 아침 존시는 커튼을 걷고 잎새 하나가 덩굴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다시 밤이 되고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도 담쟁이 잎은 끈질기게 덩굴에 붙어 있었다. 존시는 그 잎새를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수우를 불렀다. 그리고는 “난 형편없는 애였어. 죽고 싶다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야” 하고 말했다. 마침내 존시는 수프와 포도주를 탄 우유도 마시고 차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삶에 대한 희망이 그를 살린 것이다.

 

 한편 노화가 버먼은 비바람이 퍼붓던 첫날 아침에 신발과 옷이 모두 흠뻑 젖어 얼음덩어리같이 되어 급성폐렴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가 젊은 여성화가를 살리기 위해 밤새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며 잎새를 그려놓은 것이다. 버먼은 결국 『마지막 잎새』란 걸작을 남겼다."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쾌조의 스타트,

 

     첫 단추를 잘 끼우는 일부터 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를 읽고,

 

     40년만에 걸작을 남긴 老 화가(버먼)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생각하고

 

     유종(有終)의 미(美)를 배웁니다.

 

 

 

 

 

 

 

이강길

 

 

 

여러부~운~ 음악이 안들리시문 ▶를 누르세용...ㅎㅎ
                                             

                    여러분      윤복희           

 

 

 

         

신희상( (2005/12/09) : 이런 남편 혹시 있나요....

shi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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