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어려서 나는 아주 농촌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읍내로 나왔고 스물여덟에 대전에서 27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개천에서 용이 난’격으로 아주 출세를 한셈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농촌 얘기를 하면 신나기도 하고, 금년에는 배추 농사를 많이 지었지만 제가격 받기가 어려워 걱정이 많은 순수한 농촌 사람입니다. 어려서 송아지를 낳으면 시골 동네는 작은 경사가 있는 날입니다. 누구누구네 소가 어제 순산을 하였다며 모두 축하해 주기도 하고 그 송아지가 젖이 떨어지고 6개월쯤 되면 코를 뚫는 행사를 합니다.
코를 잘 뚫기로 유명한 사람이 당연히 초청되고 소의 코를 뚫을 나무를 잘 깎아 놓고, 아주 짠 간장도 준비하고, 숯불을 뜨겁게 피워놓고 송아지를 붙잡고 있을 장정들은 대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소를 달래서 몰고 오면 코를 뚫는 분이 소를 붙잡고 달래면서 숯불에 빨갛게 달은 뾰족한 나무송곳으로 순식간에 소의 코를 바른쪽 콧구멍에서 왼쪽 콧구멍으로 잽싸게 뚫어버립니다. 소는 비명을 지르고 한바탕 요동을 치고, 장정들은 소를 붙잡고 있느라고 비지땀을 흘리고, 뚫린 콧구멍에는 곪지 말라고 얼른 간장을 부어 상처를 소독하고 그리고 코뚜레나무를 잘 꽂아 묶어둡니다. 손에 땀을 쥐고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성공적으로 뚫었으면 박수로 환호성을 치며 막걸리로 축배를 들면서 기뻐했습니다.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부릴 수 있는 소가 있다면 아주 큰 부자에 속했습니다. 마땅한 농기계가 없던 시절에는 밭이나 논을 갈 소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는 멍에를 메고 밭이나 논을 갈 때 신기하게도 말을 잘 듣는 것은 바로 코뚜레로 조종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소의 모든 힘을 통제하는 코뚜레를 잡아당기거나 자극을 주면 소가 꼼짝을 할 수 없게 되고 소는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도 코는 얼굴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예민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코는 눈과, 귀와 입으로 모두 통하고, 냄새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고, 숨을 쉬는 기관과 연결되어 있어 코가 막히면 갑갑하여 숨쉬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코로 사람의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콧대가 높은 사람이라’느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세상이 달라졌을 것이라’느니 하는 말만 보아도 코가 우리의 자존심이나 우리의 입장을 얼마나 예민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사람도 어느 사람이든지 ‘코가 꿰었다’고 하면 꼼짝 없이 말을 아주 잘 듣는 사람을 말합니다. 잡기는 귀가 좋아도 꿰기는 코가 좋은 모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코가 꿰인 것입니다. 그들은 코가 꿰어서 그물과 배와 아버지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그들은 자발적이며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지만 분명 코가 꿰인 것입니다. 그들이 왜 코를 꿰였는지 생각해보면 아주 끔찍한 사실을 예수님으로부터 암시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암시는 분명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나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큰 사위는 낚시에 빠지면 가끔 밤을 새우고, 주일 미사참례를 거르기도 해서 야단을 자주 치는 편이지만 낚시 얘기를 하면 곧장 주님과 사도들을 이해합니다. 낚시는 대도 있어야 하고, 뜰망이나 줄도 있어야 하고, 낚시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기를 잡는 명당을 잘 잡아야 하지만 낚시의 기술이나 밑밥도 있어야 하고, 쉴 때 먹어야 하는 새참도 있어야 합니다. 또한 뭐니 뭐니 해도 미끼가 없으면 안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모든 세상 사람들을 당신의 나라에 불러 모으시며 당신의 몸을 찢고 조각내서 미끼가 되시며 낚시질을 할 사도들을 부르시며 낚시 대도 되고, 낚시나, 밑밥도 되고, 의자도 되고, 새참도 되고, 뜰망이 되시길 바라십니다. 당신의 낚시는 사람들의 입이나 숨통을 찢어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삶의 낚시인 것입니다. 당신의 낚시 줄은 5대양 6대주의 구석구석까지 던져질 것이며, 당신의 사도들은 세계 곳곳에 가서 또다시 찢어지고 조각내져서 미끼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우리들은 알아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안드레아 성인 축일이어서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장면을 복음에서 적고 있다고 봅니다. 그날 저의 수호성인이신 야고보와 요한 사도도 부르셨으니 오늘 나의 축일과 같이 기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주심을 같이 느끼면서 내가 주님께 코를 꿰였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내 멋대로 산 인생이었고, 주님의 도구로 산 순간이 아니었음을 실감합니다. 매 순간 내 뜻대로 살았고, 내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처럼 그렇게 찢어지고, 조각내지지 않았습니다. 내 몸을 돌보는데 더 정신이 없었기에 나와 같은 증세는 정문일침(頂門一鍼)으로 정수리에 따끔한 침을 맞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미끼를 자처하신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게 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찢고 조각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데 미끼로 쓰시고자 하시는 주님! 저희는 당신의 사도로 불림을 받고도 허울만 좋은 사이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주님 저희의 불성실을 용서 하시고 저희가 당신의 참된 사도되고 자녀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용기를 주소서. 사랑과 지혜를 주소서. 저희의 가면을 벗겨 주소서. 자비의 주님! |